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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나라가 당신 것이니

나라가 당신 것이니 / 김경욱 지음 / 문학동네 펴냄

영화
영화 '스파이의 아내' 중 한 장면
나라가 당신 것이니 / 김경욱 지음 / 문학동네 펴냄
나라가 당신 것이니 / 김경욱 지음 / 문학동네 펴냄

큰 별 하나가 책 표지 상단에 자리 잡았다. 정의의 이름으로 뭐든 막아내는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 문양을 닮았다. 신앙고백문의 한 줄로 읽힐 법한 '나라가 당신 것이니'란 문장이 책 제목으로 그 아래 쓰였다. 수호의 대상인 듯한 '나라'는 경전(經典)체여서 범접하기 곤란하다. 함부로 갈 수 없는 곳이라는 징표, 철조망 이빨을 본뜬 빨갛고 파란 테두리도 그런 뉘앙스를 돋운다.

소설가 김경욱이 5년 만에 장편소설 '나라가 당신 것이니'를 펴냈다. 400쪽이 넘는 두툼한 장편이다. 지난해 8월부터 12월까지 매주 목요일 웹진 '주간 문학동네'에 연재됐던 작품이다. 신앙고백처럼 보였던 소설 제목은 T.S 엘리엇의 시 'The Hollow Men'에서 빌려온 것이라고 작가는 말했다.

소설은 신념의 농도가 진한 제목을 부여받았지만 내용은 추적물에 가깝다. 탐정 영화만큼 인기 있는 소재인 첩보원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이다. 다만 퇴직한 첩보원인데다 치매가 왔다는 점에서 인간이 가진 태생적 허술함이 소설의 마디마다 흘러내린다.

주인공은 김도식이라는 칠순 노인이다. 전직 국가안전기획부 해외 담당 요원이다. 캄캄한 곳에서 사물의 위치를 알아채는 초능력을 가졌던 것으로 보아 어지간한 첩보원은 아니었던 듯하다. 화려했던 왕년만큼 노년이 곱진 못하다. 칠순에 접어든 그에게 왕년의 기억이란 교통정리가 되지 않는 족보보다 더한 것이었다. 작전 수행이 일상인 첩보원에게 치매란 기능 상실을 의미했다. 자연스러운 치매가 어디 있겠냐만, 그럴 만도 했던 것이, 그는 자신의 정체를 제대로 드러낸 적이 없었다.

그는 늘 실명보다 '라이카'라는 코드 네임으로 불렸고 그것도 아니면 '김 감독'이라는 별칭으로 통했다. 그랬기에 퇴직 후 자신의 정체성 혼란은 어색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불명확했고 알려진 바가 없었다. 기록 없이 기억에만 의존해야 했던 과거였다.

장례식장.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장례식장.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일상이 뒤죽박죽인 채 살아가던 김도식의 이야기는 신문 부고란 하나에서 급전환한다. 자신이 죽었다는 부고 기사다. 김도식은 이것이 자신의 죽음을 뜻하는 게 아닌 누군가로부터 전달된 암호문임을 직감한다. 자신을 첩보원으로 길러낸 멘토 '김실장'의 지령.

김도식을 불러낸 김실장은 사람 보는 눈이 유별난 사람이었다. 그는 '목사'라는 별칭이 있지만 책 외판원 신분으로 어린 시절 김도식을 처음 만난다. 한번 책을 보면 달달달 외울 수 있는 김도식의 영민한 총기를 알아챈 김실장은 김도식뿐 아니라 여러 소년들을 발탁해 그들의 특별한 능력을 활용한다. 그러나 김실장은 1990년대 말 정권 교체와 함께 횡령죄로 감옥에 갇히고, 김도식과 동료들 역시 조직으로부터 버림받는다. 김도식이 부고 기사를 접한 때는 김실장이 20년만에 출옥한 직후였다.

김도식은 옛 동료였던 피셔맨과 재단사를 찾아낸다. 침술로 자백을 끌어내던 자백 유도 기술자였지만 지금은 한의사로 살고 있는 피셔맨, 공작 대본 전문가인 재단사까지 20세기 말의 역전 용사들은 다시 뭉친다. 이들은 추적 끝에 김실장과 재회하고 최후의 작전 실행에 착수하게 된다.

출처-클립아트코리아
출처-클립아트코리아

현실 감각 얕은 임무지만 이들은 사력을 다한다. 예전의 능력은 눈씻고 찾아볼 수 없는 이들의 모습은 무모하기 짝이 없어 한편으로 애잔하게 다가온다. 치매에 걸린 김도식 역시 자신이 해독한 단서가 맞는지 헷갈려하고 점점 김실장에 대한 의심의 골도 깊어진다. "여긴 어디, 난 누구"를 자문자답해야 할 만큼 정체성 혼돈도 절정에 이른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누군가는 결국 우리 자신의 일부인지도 모른다"면서 "가면이 벗겨지는 순간 민낯이 드러나는 쪽은 가면 아래 숨은 얼굴만이 아니다. 가면이 벗겨진 자리에는 거울이 남기 마련"이라고 했다. 412쪽, 1만4천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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