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기의 필름통] 리뷰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영화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의 한 장면

'이번 주에는 뭘 볼까?'

사람 냄새나는 따뜻한 영화로 감동 샤워를 해 보고 싶다고? 그렇다면 이 영화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명배우 잭 니콜슨과 헬렌 헌트의 연기 하모니가 기가 막혔던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감독 제임스 L. 브룩스)이다. 23년 만에 재개봉했다.

TV에서 봤다고? 10번을 봤는데도 보고 또 봐도 좋은 영화가 이 영화다. 20대에 본 것과 40대에 본 것은 틀림없이 다를 것이다. 사람이 성장하면서 영화 또한 새롭게 다가오는 것이 명작의 맛이다. 이 영화는 그런 깊은 맛을 준다.

멜빌(잭 니콜슨)의 예를 들어볼까?

그는 괴팍하고 신경질적이다. 강박증상까지 있다. 길을 걸어도 보도블록 경계선을 피해 밟는다. 식당에 가면 늘 앉던 테이블에 앉아야 하고, 남들이 쓰던 나이프와 포크도 사용하지 않는다. 혹시 자기 자리에 남이 앉아 있으면 고약한 언사로 쫓아 보낸다.

멜빌은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는 캐릭터이다. 그러나 그의 내면을 들여다보자. 그는 숨김이 없다. 에둘러 말하지 않는다. 그것도 가식이다. 속내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르지 않다. 그의 진실됨을 가장 먼저 간파한 것이 강아지 버델이다. 옆집 게이 화가 사이먼(그렉 키니어)이 키우던 개다. 사이먼이 강도를 만나 다치면서 잠시 떠맡았는데, 나중에는 주인보다 멜빌을 더 따른다.

멜빌에게 연애의 달달함 또한 언감생심이다. 사랑의 '사'자도 모르면서 로맨스 소설 작가로 성공하는 것도 아이러니다. 그런 그가 캐롤(헬렌 헌트)에게 이런 멘트를 날린다.

"당신은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어요."(You make me wanna be a Better Man)

마른 땅처럼 까칠한 멜빌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다니. 진심이 폭풍처럼 전해져 캐롤을 감동시킨다. 도저히 변할 것 같지 않던 사람이 나로 인해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데, 감동 받지 않을 수 있을까. 이 대사는 영화 역사상 가장 로맨틱한 대사로 손꼽힌다.

영화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의 한 장면

캐롤(헬렌 헌트)은 어떤 사람일까?

마흔 넷의 싱글맘이다. 천식을 앓고 있는 아들이 걱정이다. 없는 형편에 약값도 부담이 되고, 친정 엄마까지 함께 살고 있다. 식당 웨이트리스 일을 하면서 얼마 안 되는 팁으로 근근이 살아간다. 아들 걱정에 변변한 연애 한 번 못해봤다.

아이 때문에 식당일을 못하게 되자 멜빌이 유명한 의사를 소개해준다. 진료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캐롤이 없으면 밥맛이 안 난다는 것이 멜빌의 이유. 캐롤은 그것이 너무나 고마워 장문의 감사의 편지를 쓴다.

캐롤은 힘들게 살아가지만, 인간성은 놓지 않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상당히 현실적인 캐릭터다. 이에 반해 멜빌은 인간성은 '개차반'이지만, 돈도 많고 인맥도 탄탄하다. 그의 강박 행동은 그를 상당히 비현실적인 캐릭터로 비치게 한다.

이런 상반된 둘이 서서히 다가서는 과정이 영화의 큰 줄기이다. 여기에 또 하나 등장하는 캐릭터가 바로 사이먼이다.

그는 부모와 담을 쌓고 살아가는 동성애자다. 화가로 이름을 알리지만, 어느 날 강도가 들면서 몸도 마음도 다친다. 애견 버델마저 자신을 떠난다. 그를 도와줄 사람이 하나도 없자 결국 부모에게 손을 벌리기 위해 찾아간다. 그 동행이 바로 멜빌과 캐롤이다.

옆집 남, 멜빌은 자신을 개보다 더 혐오한다. 동성애자이기 때문이다. 그의 거침없는 폭언이 그를 더욱 괴롭힌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폭언도 틀린 말은 아니다. 배고픈 밤에 야식을 들고 문을 두드리는 것도 멜빌이다.

영화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의 한 장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차가운 도시의 외로운 사람들이 서로 의지하며, 인정의 꽃밭을 가꾸는 영화다. 멜빌과 캐롤의 사랑도 익어가고, 사이먼에 대한 따뜻한 우정도 살아난다. 차갑고 날카롭고 어둡던 마음들이 환하게 밝혀지는 신비로운 영화다.

이 모든 것이 도저히 변할 것 같지 않던 멜빌이 변하면서 생기는 마법이다. 어느덧 멜빌이 보도블록의 경계선을 밟고도 의식하지 못할 때, 짙은 휴머니즘의 향기가 피어오른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단순한 영화 제목을 넘어 가장 충만한 상태를 뜻하는데, 영화는 그런 만족감과 행복감을 관객에게 여실히 전해준다. 보고 또 봐도 그랬다. 138분. 15세 이상 관람가.

김중기 문화공간 필름통 대표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