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상헌 기자의 C'est la vie] 정미라 더나눔협동조합 대표

달성공원 주변 저소득층 주거 개선 지원…지역공동체 구현 10여 년째 씨름
'달성토성 커뮤니티센터' 위탁 운영…주민 생산품 판매·교육 프로그램도
경일대 링크플러스사업단 도움받아…도배·장판 교체·방충망 설치 등 봉사

정미라 더나눔협동조합대표가 대구 중구 대신동 한 노후주택에서 방충망 설치를 위해 문틀을 줄자로 측정하고 있다. 이상헌 기자
정미라 더나눔협동조합대표가 대구 중구 대신동 한 노후주택에서 방충망 설치를 위해 문틀을 줄자로 측정하고 있다. 이상헌 기자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1944~2015)은 1986년에 펴낸 명저 '위험사회'(Risk Society)에서 "부(富)는 상층에 축적되지만 위험은 하층에 축적된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 딱 맞아 떨어지는 명제(命題)가 아닐 수 없다. 양극화가 심화되는 'K형 경제 회복'은 우리 사회를 더욱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이 될 것이란 우려가 적지 않다.

그는 위험사회를 극복하려면 사회 구성원들의 합리적인 유대와 꾸준한 단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이 소통하고 대화하면서 공론의 장을 만들어 문제 해결에 동참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말이 쉽지, 이런 일이 현실에서 이뤄진다는 것은 다분히 이상(理想)에 가깝다.

경북 상주시가 고향인 정미라(50) 더나눔협동조합 대표 역시 지역공동체 구현이라는 난제와 10여 년째 씨름하고 있다. 지난해 가을에는 그동안 누적된 스트레스가 원인이 돼 뇌경색으로 쓰러지기도 했다. 다행히 일찍 병원으로 이송된 덕분에 큰 후유증 없이 다시 일어나긴 했지만 자칫 큰일날 뻔했다.

"2009년 서울에서 이사오기 전까지 '아름다운가게'에서 봉사하면서 지역공동체란 단어의 매력에 빠졌습니다. 대구에 와선 구청 생활공감정책모니터단 활동을 하는 한편 대구여성회관에서 수업을 들으며 각종 자격증을 땄고요. 이후 동네 주민센터에서 가구 제작, 손글씨 POP 제작 등을 가르친 게 인연이 돼 지인들과 2017년 협동조합을 만들었습니다."

그의 활동 무대는 대구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달성공원(사적 62호) 주변이다. 2017년 11월 더나눔협동조합이 중구청으로부터 '달성토성 커뮤니티센터'(달성공원로 28·이하 센터) 운영을 위탁받으면서다. 하지만 삼한시대부터 이어지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이곳은 대구에서 손꼽히는 낙후된 동네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옛 모습 그대로다.

낡은 한옥을 리모델링한 센터는 정부의 주거취약지역 생활여건 개선 프로젝트인 '새뜰마을사업'으로 조성됐다. 커피, 생강청 등 주민 생산품을 판매하는 '마을쉼터 카페', 빔프로젝터를 갖춘 '마을 커뮤니티실', 생활공구를 대여하거나 목공예품을 만드는 '마을 공동작업소'로 꾸며졌다. 복지·편의시설이자 주민 스스로가 주인이 돼 마을을 관리해 나가는 출발점인 셈이다.

대표적인 주민 교육 프로그램으로는 화장실·싱크대 수전(水栓) 교체 등을 익히는 집수리 교실, 연필꽂이·냄비받침 같은 소품을 만드는 공예 교실이 있다. 2019년 12월에는 극장에 가기 힘든 어르신들을 위해 센터에서 '달성토성 영화제'를 열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대면수업은 모두 중단됐다.

"지난 4월에는 주민들을 위해 지압 교실을 마련했는데 딱 두 분만 오셨더라고요. 주민 대다수가 감염에 취약한 고령층이다 보니 외출을 극도로 꺼리시거든요. 달성공원을 찾는 외지인들이 크게 줄면서 마을쉼터 카페의 매출 역시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어서 코로나19 사태가 끝나 마을이 웃음을 되찾았으면 좋겠어요."

정미라 더나눔협동조합 대표가 도심재생사업으로 꾸며진 마을 벽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상헌 기자
정미라 더나눔협동조합 대표가 도심재생사업으로 꾸며진 마을 벽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상헌 기자

센터의 활동은 크게 위축됐지만 정 대표는 여전히 분주하다.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재정지원사업으로 진행되는 경일대 링크플러스(LINC+)사업단의 도움으로 저소득층 주거 개선을 지원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링크플러스란 대학과 기업의 공동 교육과정 운영을 통해 채용 연계성을 높인 사회맞춤형 학과를 확립하는 사업이다.

그는 평소에 달성공원 주변 노후주택에 사는 주민들의 불편사항을 파악해둔 뒤 대학생들과 함께 손수 도배·장판, 방충망 설치, 페인트 칠, 계단 턱 만들어 주기 같은 봉사에 나선다.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경력도 도움이 되고 있다. 처음에는 색안경을 끼고 보는 어르신들도 없지 않았지만 지금은 다들 딸처럼 대해준다는 게 그의 귀띔이다.

"자기 돈 버는 일하는 게 아니냐는 주민들의 오해를 풀어드리려면 제가 부지런히 마을 일을 챙기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곳에서 수십 년 동안 살아온 어르신들 입장에선 제가 굴러들어온 돌에 불과하니까요. 마을 청소를 하고, 꽃길을 만들고, 격의 없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언젠가부터 저를 정 센터장이 아니라 정미라라는 이름으로 불러주시더군요. 하하하."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