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립습니다] 신상섭 씨 어머니 故 양외란 씨

6·25전쟁으로 남편 잃고 농사지으며 네 자녀 키우셨지요
30세에 홀로 되어 평생 온갖 고생 다 하시다 떠나셨습니다

1980년 양외란 씨 생전모습. 가족제공.
1980년 양외란 씨 생전모습. 가족제공.

어머니! 모두 다 어머니가 살아 계시기도 하고 또한 세상을 떠나시고 없는 분도 있겠지요. 그러나 우리 엄마는 다른 엄마들과는 달라 세상을 떠나신 지 30여 년이 넘어도 그리워하며 잊지 못하는 것은 우리 엄마는 남자 같은 여장부, 장한 어머니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세월이 흐르면 잊혀지리라 생각하였지만 저 또한 늙어가고 아이들이 성인되고 손녀들이 자라니 더욱더 어머니 생각이 납니다.

6.25 한국전쟁이 터진 그해 어느 늦은 여름날 아버지는 '남자로 태어나서 국가의 부름에 군대에 가야 한다.'며 전쟁터에 나가셨습니다. 30살의 우리 엄마는 두 살배기 막내 그리고 5살, 7살, 10살의 4남매와 할머니를 모시고 살아가려니 눈앞이 캄캄하였겠지요. 그래도 아버지가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이를 악물고 열두 마지기 농사를 지으며 아이들 키우랴 할머니 모시랴 발바닥이 땅에서 떨어질 날 없고 손에 물 마를 날이 없이 농사일하고 남편 소식을 기다렸겠지요.

전쟁이 끝나도 소식이 없다가 그 어느 해 가을 육군본부의 등기 우편물에 00지구에서 전사하였다는 조그만한 전사통지서 한 장이 아버지에 대한 마지막 소식이었습니다. 엄마와 할머니는 믿지 못하고 꼭 살아 돌아올 것이라고 기다리다 할머니도 세상을 떠나고 그동안 우리 형제들은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저가 1964년 육군에 입대하고 형도 이듬해 입대해 홀로 한 가정을 꾸리는 어머니의 심정은 오죽했겠습니까? 저가 1966년도 제대하여 공무원시험에 합격하였을 때 우리 엄마의 그 기뻐하는 얼굴이 지금도 선합니다. 이제 내 아들도 당당한 공무원이 되었으니 주변의 시선도 전과 달라졌다고 자랑하는 우리 엄마. 그렇게 엄마를 즐겁게 하는 것이 효도인 줄 몰랐습니다.

1959년 신상섭 씨 형제들과 어머니 양외란 씨 가족사진. 가족제공.
1959년 신상섭 씨 형제들과 어머니 양외란 씨 가족사진. 가족제공.

그러나 얼마 후인 이듬해 겨울, 내 동생이 서울에서 연탄가스에 중독이되 의식을 잃고 병원에 입원하였다는 비보를 듣고 엄마와 나는 밤차를 타고 첫 새벽에 영등포역에 내려 친척의 도움으로 병원에 찾아가 산소호흡기로 연명하는 동생을 보고, 엄마와 나는 너무나 비통하여 오열을 토하였지요. 20살인 동생을 홍제동에서 연기로 하늘에 보내고 한강에 골분을 뿌리며 모든 액운은 이번으로 끝을 내고 다시는 이러한 불운이 없길 빌며 엄마와 나는 부산 행 밤차로 귀가하며 엄마는 자식을 버리고 집에 가려 하니 남세 서럽다하며 눈물을 삼키는 그 모습이 선합니다.

엄마는 그러한 역경을 이겨내고 큰아들, 작은아들을 그리고 막내딸을 순서대로 결혼시키고 손자 손녀 보았을 때 기뻐하는 그 모습. 그리고 환갑날 마을 어르신과 즐겁게 노시는 그 모습 눈에 선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쉽게 세상을 떠나실 줄은 몰랐지요. 30살에 홀로되어 40년간 홀로 70 평생을 사는 동안 편안히 한번 모셔 보지도 못하였으니 할 말이 없습니다.

88 올림픽을 치른 후 1990년도에 자동차를 샀는데 그 자가용 자동차 한번 제대로 태워드리지 못하고 엄마는 70세 일기로 1991년 1월 2일 운명하였지요. 엄마가 세상을 떠난 후 수년이 흘러도 그리움은 더욱더 새로워지고 엄마에게 효도를 하지 못한 괴로움은 쌓여만 갑니다. 엄마의 무덤 앞에 올린 글 읽어 보셨는지 다시 한번 되새겨봅니다.

어머니 무덤 앞에

여기 나라 위해 몸 바친
한 용사의 미망인이 행여나 하며 기다리다
지쳐 고이 잠들고 있습니다.

그녀는 남원양씨로
열아홉에 영산신씨 가문에 시집을 왔어

아들딸 사 남매를 낳아 이대 독자의
대를 이어 손자 손녀를 보았건만
한 많은 인생을 누가 이해하려나

열 살 일곱 살 다섯 살 두 살의 아들딸을 두고
나라의 부름에 육이오의 전쟁터로 남편을 보내고

서른 살에 홀로되어 칠십 평생을 홀로 기다리며
아들딸 공부시키느라 온갖 고생 다 하신
남자와 같은 여장부 장한 어머니

스무 살 다 키운 셋째를 불의의 사고로 버려야 하는 운명!
얼마나 뼈아팠겠습니까?

어머니!
어머니의 마음을 그 누가 아리요
아들 손자 걱정에 단잠을 깨며

한없이 소리 없이 목이 메 이도록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고

들녘에서 농사일로
허기를 만나도 오직 아들딸
생각으로 허리띠를 졸라매던 그 세월

그렇게 평생을 고생하시다 가신
장한 어머님이 고이
잠들고 있습니다.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작은 아들입니다. 어머니가 보고 싶을 때 몇 장 안 되는 사진이나마 몇 번이고 보고 또 보고합니다. 어머니! 그리운 어머니! 보고 싶어요,

작은아들 지산 상섭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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