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윤석열의 출사표

이대현 논설위원
이대현 논설위원

"느린 말과 무딘 칼 같은 재주나마 힘을 다해 간사하고 흉악한 무리를 쳐 없애겠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漢)의 황실을 일으켜 옛 도읍지로 돌아가는 게 폐하에게 충성하는 직분입니다." 중국 촉나라 재상 제갈량의 '출사표' 중 일부다. 위나라 토벌을 위한 출병에 앞서 황제에게 출사표를 올렸다. 빼어난 문장은 물론 애국심, 선제(先帝) 유비에 대한 충성심이 배어 있어 이를 읽고 울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였다.

출사표(出師表)는 군대를 출동시키면서 임금에게 올리는 글이다. 사는 군대를, 표는 임금에게 바치는 글을 뜻한다. 출사표가 시간이 지나면서 관용어적인 표현으로 널리 쓰이게 됐다. 선거에 나서겠다는 의사를 밝힐 때 '출사표를 던지다'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출사표를 던지는 인사들이 줄을 잇고 있다.

지지도 1위를 달리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출사표는 강렬했다. 그는 "무너진 자유민주주의와 법치, 시대와 세대를 관통하는 공정의 가치를 기필코 다시 세우겠다"며 대권 도전을 선언했다. 그의 출사표에는 "국민 약탈을 막아야 한다" "선동가들과 부패한 소수의 이권 카르텔" "부패완판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아니고 독재요 전제" 등 문재인 정권을 향한 수위 높은 표현들이 쏟아졌다. 윤 전 총장은 "정권 교체"를 8차례나 언급하며 "이런 국민의 열망에 부응하지 못하면 국민과 역사 앞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이라고 했다.

윤 전 총장과 함께 유력한 야권 대선 주자로 꼽히는 최재형 전 감사원장도 조만간 정치 참여를 선언할 전망이다. 최 전 원장이 어떤 출사표를 보여줄지 흥미롭다.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등 다른 야권 대선 주자들의 출사표도 기대가 된다.

야권 대선 주자들의 출사표는 하나로 귀결될 것이다. 자신이 위기에 빠진 이 나라를 구할 적임자라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그들의 출사표에 현혹되지 말고 누가 나라를 구할 대통령이 될 수 있는가를 꼼꼼히 살피는 게 중요하다. 국가를 위해 헌신할 사람을 가려내야 한다.

제갈량은 출사표에서 약속한 것처럼 나라를 위해 싸우다 전장에서 세상을 떠났다. 제갈량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야권 대선 주자들이 출사표에서 약속한 바를 지키기 위해 분골쇄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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