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쾌감은 대개 취미로 안착한다. 책을 좋아하는 이들이 작가와 공감하는 문장에 불현듯 무릎을 치며 줄쳐 읽는 게 대표적이다. 사람마다 '영감(靈感)'을 받는 지점은 제각각이다. 지극히 개별적인 경험이다. 같은 강의실에 있더라도, 같은 여행지를 돌아다녀도, 같은 책을 읽더라도 자극받는 부위와 부피와 질감은 다르다. 마치 공중에 부유하는, 우주의 별처럼 뿌려진 영감을 각자가 발견해 따내는 것 같기도 하다.
대구 달서구 송현동에 있는 '선택의 자유'라는 이름의 동네책방은 식물들이 자극을 주는 곳이었다. 바꿔 말해 이곳은 식물에 진력을 다해 구애하는 곳처럼 보였다. 대구도시철도 1호선 월촌역과 멀지 않은 송현주공시장 인근의 이 책방은 화분이 정체성을 은은하게 분출하고 있었다. '노루오줌' 등 이름을 알려주지 않으면 평생 모르고 지낼, 그저 '특이하게 생겼구나' 하고 지나칠 야생식물들이 화분에 담겨 책방 출입구 앞에서 손님을 맞았다.

책방 안에도 '파리지옥', '포포리아' 같은 희귀식물들이 똬리 틀고 앉았다. 식물 키우기에 진심인 책방이라는 건 그림 액자에서도 강렬하게 전해졌다. 통상 느낌있는 그림 한 조각 정도로 책방의 무난함을 전시하기 마련이었으나 이 책방은 줄기까지 붙어있는 양파의 전신(全身) 사진을 액자 속 주인공으로 모셔두고 있었다.
밭에서 갓 캔 듯한 양파가 주인공으로 액자 속에 모셔진 이유에 대해 책방지기 이정민 씨는 "올해 봄 텃밭에서 캐낸 양파다. 겨우내 비료도 제대로 안 주고 방치하다시피 해서 죽을 줄 알았는데 잘 자라 있더라. 강인한 생명력의 상징으로 느껴졌다"고 했다. 감흥이 조금만 더 컸더라면 이름까지 붙였을 것만 같았다. 사람마다 영감을 잡아채는 포인트는 확실히 달랐다.

책방의 색깔을 드러내는 북큐레이션에서도 식물도감만 못 찾았을 뿐 책방지기의 식물 사랑은 온전히 전달됐다. '산책자를 위한 자연수업', '세계를 여행한 식물들', '씨앗의 승리', '야생의 위로', '숲은 고요하지 않다', '매혹하는 식물의 뇌'가 서가를 채우고 있었다.
2019년 12월 문을 연 곳이었다. 역시나 여느 동네책방의 탄생 사연과 비슷한, 공유 정신에서 연 책방이었다. '좋은 걸 혼자만 즐기면 무슨 재미냐'는 덕업상권의 미덕은 화수분처럼 솟아나는 동네책방의 원천이다.
책방지기 이 씨에겐 범상치 않은 이력이 있었다. 그는 소설로 유력 문예지에 등단한 적이 있고, 유니세프 등 해외 구호기관에서 오랜 기간 일한 경력이 있다고 했다. 그가 2021년 선택한 삶의 방식 중 하나는 동네책방이었다. 그는 "코로나에서 자유로워지면 희곡을 함께 읽는 모임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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