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매일신문 사회면에 '생활고 못 이긴 코로나 장발장?' 제목 아래 두 건의 기사가 실렸다. 한 건은 생활고로 노숙자가 된 40대 남성이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늦은 밤 복지관 구내식당에 몰래 들어가 라면과 참치 캔 등을 꺼내 먹다가 체포된 일이었다. 훔친 물품들은 인근 학교의 방과 후 교실에 다니는 취약계층 아동들을 위해 쓰일 예정이었다. 40대 노숙자의 가방에선 참치 캔 3개, 통조림 햄 1개, 즉석요리 식품 5개, 라면 8봉지 등 3만5천 원 상당의 물건이 발견됐다. 사연을 접한 복지관 관계자는 "선처할 의향이 있다"고 했고, 경찰은 전과가 없고 피해 규모가 크지 않아 불구속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다른 한 건은 생활고로 마트에서 2만6천 원 상당의 5㎏ 쌀 한 포대를 훔치려 한 20대에 법원이 징역 3개월의 선고유예를 결정했다는 판결 기사였다. 선고유예는 쉽게 말해 가벼운 죄를 저질렀을 때 한 번 선처한다는 뜻이다. 사건의 주인공은 예전에도 같은 마트에서 물품을 훔치려다 들켰고, 마트 주인이 생활고를 겪는다는 하소연을 듣고 신고하지 않자 다시 같은 곳에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재판부는 마트 주인이 처벌을 원치 않고, 생계가 어려웠으며, 별다른 범행 전력이 없다며 선고유예를 결정했다.
사연 속 주인공들이 어쩌다가 이처럼 극한 상황에 몰리게 됐을까 생각해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피해자도 경찰도 법원도 여기에 공감해 한 번 더 기회를 주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기사를 접한 이들의 반응이었다. 댓글을 통해 연민과 격려를 보낸 사람들도 있었지만 많은 댓글에는 차마 입에 담기 힘든 내용들이 있었다.
젊은 나이에 뭘 해도 먹고살 방법은 있는데 동정할 여지가 없다거나, 노숙인이 만지고 오염시켜 놔서 더러워서 밥 못 먹겠으니 식당을 소독하고 대청소하라는 글도 있었다. 재활 의지가 전혀 없는 이런 사람들에겐 교도소가 답이라는 반응도 있었고, 심지어 훔쳐 먹으면서 사느니 극단적 선택을 하는 편이 낫다는 분노에 찬 글도 있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두형이 쓴 책 '그냥 좀 괜찮아지고 싶을 때'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보통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확신할 만한 이유를 찾는 데 익숙하여 반대의 이유를 살펴보는 일을 등한시한다. 그 생각이 강렬한 감정(사랑, 분노, 불안, 좌절 등)과 결부되어 있다면 더욱 그렇다. 마음이 어지러울수록 침착해야 한다. 호흡의 속도를 늦추고 감정의 불길을 가라앉히고 찬찬히 돌아보는 것이다. 물론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감정이 계속 활활 타오를 때 딱 하나 이 질문을 떠올려 보기를 권한다. '진짜 그런 걸까?' 억지로 좋은 쪽으로 볼 이유는 없다. '이 생각이 전부 맞는 걸까?'라는 질문을 머릿속에 떠올리는 순간 1퍼센트라도 아닐 가능성이 생기게 된다. 일단은 그것으로 충분하다."
불과 1년여 전 우리는 코로나19 위기 속에도 침착했고, 곤경에 빠진 사람을 도왔으며, 얌체들에게 눈 한 번 흘기고는 손 내미는 여유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백신 접종을 통해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싹트고 있는 반면에 극심한 대립과 갈등 속에 배려는 자취를 감추고 있다. 편가르기의 폐해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내 생각이 전부 맞는 걸까'라는 생각을 떠올릴 여유조차 사라졌나. 공감이 어렵다면 인정, 포용이 힘들다면 관망, 배려가 버겁다면 묵인이라도 안 될까. 목에 핏대를 세워 가며 악다구니 쓰는 대신 잠깐 식식거리며 숨을 고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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