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청도 운문사 사리암 가는 솔숲에
소쩍새도 잠든 까만 밤이 찾아왔습니다.
오후 8시 30분. 산중에 별빛이 흐를 무렵
고요한 숲을 깨우는, 깜박이는 빛 하나.
잔치가 시작됐습니다.
까만 풀섶에 쪼그려 그 빛을 쫓았습니다.
윙크하듯 이쪽에서 깜박 깜박 빛을 내니
저쪽에선 화답하듯 반짝 반짝 더 빛납니다.
아뿔사, 한 둘이 아니었습니다.
사방에서 불꽃을 튀기며 난리가 났습니다.
부스럭 발자국 소리에 들킨 족제비도,
산책나온 아기 고라니도 덩달아 신이 났습니다.
소리도 없이 정체도 없이 홀연히 나타나
까만 밤을 한땀 한땀 시리도록 수놓는 샛노란 불빛….
모깃불 연기에 눈물 쏟던 그 시절,
꽁무니에 불을 달고 마실 나온 그를 잡겠다고
돌부리에 무릅을 깐 줄도 모르고 쫓았습니다.
마당으로, 골목으로 요리조리 잘도 날더니
담장 너머 감나무 속으로 휙 사라지던 개똥벌레….
여름밤을 노랗게 물들이는 저 불빛은
짝을 찾는 달달한 사랑의 세레나데.
암수 비율 1대 50. 수컷들의 치열한 몸부림이란 걸
철 없던 그땐 정말 몰랐습니다.
1931년 6월 이곳 운문산에서 첫 발견돼
이름마저 그대로 지은 '운문산반딧불이'.
개똥 만큼 흔해 개똥벌레라 불렀던
형설지공(螢雪之功)의 그 형(螢), 반딧불이.
덩치라곤 10mm 남짓, 새끼 손톱만한 곤충이지만
그가 있어 여름밤이 즐겁던 유년의 소꿉친구였습니다.
그동안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소식도 몰랐는데
인적 끊긴 이 산중에서 저리 신나게 놀고 있었습니다.
7월 첫날, 운문산의 운문산반딧불이는
자정이 훌쩍 넘도록 사랑의 잔치를 벌였습니다.
숲속에 요정이 산다면 이 녀석들이 틀림없습니다.
도심의 밤은 대낮 같지만
이곳엔 아직도 호롱불 같은 그 친구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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