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22일, 쿠바 의료진 52명이 이탈리아에 도착했다. 가난한 나라 쿠바가 코로나19로 의료 붕괴의 위기에 처한 이탈리아를 돕기 위해 의료진을 보낸 것이다. 시민들은 슈퍼히어로 영화 '어벤져스'에 빗대 '쿠벤져스'라며 응원했고,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진정한 국제 연대'라며 찬사를 보냈다. 쿠바는 코로나19 확산 시기 세계 20여 개국에 1천200여 명의 의료진을 파견했다.
쿠바의 '하얀 가운 부대'는 그동안 많은 인도적 지원을 해왔다. 2014년 서아프리카 에볼라 창궐 때도 의료진을 파견했고, 1998년 허리케인이 중남미 지역을 강타하자 즉각 현장으로 달려갔다.
서구 선진국에서 쿠바는 '의료 모범국'으로 통한다. "의료? 쿠바에 물어봐" 2005년 1월 12일 자 뉴욕 타임스 기사의 제목이다. 1인당 의료비가 만 달러를 넘는 미국의 유아사망률이 천 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는 쿠바보다 높음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쿠바는 평균수명 등 다른 건강지표에서도 선진국에 견주어 뒤지지 않는다.
이러한 쿠바 의료의 힘은 '쿠바의 보석'이라 불리는 지역공동체 속 1차 의료체계에서 나온다. 쿠바 국민은 평생 '가족 주치의'의 보살핌을 받는다. 아프면 1차 의료 기관인 '콘술토리오'에서 주치의와 상담한다. 약 120~150가족을 돌보는 주치의는 주민 건강 문제의 약 80%를 담당한다. 주치의가 해결하기 힘든 경우 2차 의료 기관 '폴리클리니코'로 전원하며, 중증 환자만 3차 의료 기관에 의뢰된다.
쿠바는 주치의 제도 정착을 위해 의학 교육의 초점을 가족 주치의 양성에 두고 많은 1차 의사를 배출했다. 인구 1천명당 쿠바의 의사 수는 8.2명으로 세계 1위다. 우리나라의 3.4배에 달한다. 많은 나라에 의사를 파견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쿠바 주치의 제도는 감염병 예방에도 큰 역할을 해왔다. 주치의가 백신 접종을 독려하고 부작용 발생 시 대처법을 설명하기에 접종률을 높일 수 있었고, 집단면역의 극대화로 이어졌다.
불행하게도 우리에게는 건강을 책임져주는 주치의가 없다. 몸이 아프면 용하다는 병·의원을 찾아 헤맨다. 과거 병력과 가족 병력도 환자가 꿰고 있어야 한다. 진료의뢰서 한 장이면 종합병원도 찾을 수 있지만, 자신의 병을 이해하기에 '3분 진료'는 너무나 짧다. 코로나19 확산 시기에는 미열이라도 나면 상담할 의사가 없어 어찌할 바를 몰랐다.
주치의 제도가 이러한 문제의 답이 될 수 있다. 주치의는 환자의 병력은 물론이고 사회 경제적 상황까지 파악하고 있기에 통합적 치료가 가능하다. 아울러 신종 감염병을 예방하는 최일선 안전망이 될 수 있다. '문지기' 역할을 맡은 주치의가 필요할 때만 상급병원에 의뢰하므로 의료비 상승도 막을 수 있다. 많은 나라가 의료 개혁의 핵심으로 주치의 제도를 꼽는 이유다. 2005년 우여곡절 끝에 주치의 제도를 도입한 프랑스는 2008년 한 해에만 약 2천억 원의 의료비를 절약했다.
주치의는 대통령이나 재벌 총수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온 국민이 주치의를 갖게 되고, '쿠벤져스'가 아니라 우리의 '코벤져스'가 세계 곳곳에서 맹활약하는 그날을 꿈꿔 본다.
김동은 계명대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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