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원선의 힐링&여행] 남해 금산 보리암

기암괴석이 만든 38경 나를 품어주네∼
한려해상국립공원 유일한 산악공원…보광산→금산 개칭, 조선 개국과 연관
3년 공덕 쌓아야 본다는 보리암 일출…단풍 뒤덮인 10월 말∼11월 중순 최적

상사바위에서 바라다 본 보리암, 기암괴석이 보리암을 호위하고 있는 듯하다.
상사바위에서 바라다 본 보리암, 기암괴석이 보리암을 호위하고 있는 듯하다.

강화도 보문사, 낙산사 홍련암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기도처의 하나인 보리암을 찾아가는 길이다. 한적한 고속도로를 달리는 밤하늘에 달은 넘어가고 별무리가 반짝인다. 바쁘다며 무심코 지나친 지난 시간들이 쌓여 초롱초롱한 별무리가 눈에 생경하다. 흔들흔들 남해대교를 건너서 미륵불이 도왔다는 미조항에 다가드는지 짭조름한 바다 향속에 비릿한 멸치냄새가 베어난다.

남해 금산은 해발 704m로 한려해상국립공원 중 유일한 산악공원이며 온통 기암괴석들로 뒤덮여 38경의 절경을 이루고 있다. 신라 때 원효대사가 보광사를 짓고 보광산이라 불렀는데 후일 금산으로 개칭 되었다.

남해 보리암의 여명
남해 보리암의 여명

◆ 조선 개국설화가 깃든 남해 금산과 보리암

보광산이 금산으로 이름을 바꾼 데는 조선의 개국설화와 관련이 있다. 고려 말 이성계가 백두산과 지리산에 들어가 왕이 되게 해 달라고 산신에게 빌었으나 들어주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이곳으로 와 산신령에게 만약 왕이 된다면 산 전체를 비단으로 둘러 주겠노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훗날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게 되자 영세불망의 영산이라 비단으로 산을 두르려 했지만 큰 산을 비단으로 두른다는 것은 언감생심, 불가능했다. 고민 끝에 비단 금(錦)를 내리니 현재의 금산이 된다.

금산의 정상 부근에는 남쪽을 향한 보리암이 있다. 원래는 '보광사'였으나 후일 보광산이 금산으로 바뀔 때 보리암으로 개칭된다. 보리암에서 일출을 보려면 3년 동안 공덕을 쌓아야 할 정도로 보리암의 일출은 장엄하다. 이를 보려면 단풍이 불그스레하게 비단색깔로 산을 뒤덮어 오는 10월 말에서 11월 중순경이 최적기일 것이다. 여름철 보리암의 일출은 암자 옆을 비스듬히 지나 동북쪽으로 치우치고 있었다.

보리암의 해수관음상 앞에는 높이 2.3m, 경남 유형문화재 제 74호인 삼층석탑이 있다. 683(신문왕 3)년 원효의 금산개산을 기념하기 위하여 김수로왕비인 허태후가 인도 월지국에서 가져온 파사석을 이용하여 지었다는 설이 있다.

보리암에서 바라다보는 상사바위
보리암에서 바라다보는 상사바위

◆남해 다도해가 한 눈에

보리암에서 일출을 맞은 후 상사바위를 향해 길을 나섰다. 상사바위는 보리암에서 약 5~6백m정도의 거리로 서쪽 산기슭에 돌출된 바위다. 산길을 가는 도중 단군성전을 오른쪽으로 스쳐 지나는데 일행 중 누군가 "어머나 여기 뱀딸기가 있네"한다. 뱀딸기는 익으면 빨간색으로 탐스럽지만 맛은 밍밍해서 별로다. 그래선지 유년 시절 뱀딸기는 뱀이 침을 뱉어놓아 먹을 수 없다고 또 근처에 뱀이 지키고 있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먹지 않은 딸기다. 짙푸른 녹색을 디테일로 빨갛게 도드라졌지만 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상사바위는 상사에 관한 전설이 깃든 바위다. 전설에 따르면 옛날 돌산에 살던 최씨란 사람이 금산 아래로 흘러들어 수절과붓집에 머슴을 산다. 처음에는 그럭저럭 지내던 최씨가 어느 날인가부터 부쩍 여위어 가기 시작했다. 최씨의 마음속에 수절과부가 들어앉은 때문이었다. 흔히 말하는 상사병에 걸린 것이다. 수절과부가 최씨를 볼 때 필시 미구에 죽을 것만 같았다.

생각다 못한 수절과부는 생명이 먼저라 생각했는지 최씨를 불러 모월 모일 보름달이 뜨는 밤을 기해 산 정상에 있는 바위에서 만나자고 했다. 그날 밤 바위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오로지 바위만 안다. 이후 최씨는 건강을 되찾았고 부부가 되었다는 설과 떠났다는 설이 함께 전해지고 있다. 또한 춘천 청평사 원나라 공주의 상사뱀의 전설처럼 청혼을 거절당한 총각이 뱀으로 환생하여 처녀의 몸에 깃들자 갖가지 방법 끝에 바위에서 밀었다는 설도 있다.

상사바위는 의외로 넓고 큼직했다. 전망대 끝에 서자 남해의 경치가 한 눈에 들어왔다. 다도해란 단어에 걸맞게 바다위로 점점이 섬이 떠있다. 눈 아래로 상주해수욕장의 하얀 모래사장과 그 뒤를 받치는 방풍림이 검은 선을 그었고 성냥갑처럼 오밀조밀한 어촌마을이 정겹다.

상사바위에서 내려다 본 남해 풍경
상사바위에서 내려다 본 남해 풍경

◆ 추억의 금산산장

간식으로 준비한 떡과 음료수로 새벽허기를 면하고 상사바위를 내려와 녹음 짙은 숲을 헤쳐 오른쪽으로 휘어진 길을 따라 금산산장으로 향했다. 도중에 옛날 신라의 원효대사·의상대사·윤필거사 등 삼사가 수도좌선을 했다는 좌선대가 있다. 바위 위에는 삼사가 앉았던 자리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했지만 바위가 높다보니 확인할 수는 없었다. 좌선대를 지나 20여분을 걷자 눈앞으로 금산산장이 나타났다.

산장은 빨간색 지붕에 흰색으로 몸을 둘러 산기슭에 조용히 깃들어 있었다. 기억속의 산장은 할머니께서 등산객들에게 간단한 음식을 파는 곳이었다. 옛 기억에 따라 "파전이 되나요?"묻자 요즘은 국립공원법에 의해 음료수, 컵라면, 비빔밥 정도만 가능하며 술은 어림없다며 손사레다. "머잖아 그만 둬야 할 것 같네요"하며 할머니의 애타는 마음이 녹아 있다.

산장을 떠나 조금 더 걷자 금산 33경의 흔들바위(搖岩)를 마주한다. 거북이 모양을 닮아 본래는 귀암(龜岩)이라 불렀으나 설악산 흔들바위처럼 큰 바위가 한 사람의 힘으로도 흔들거려 '요암'라고도 하는 바위다. 바위는 검은 이끼가 전체를 덮고 있었다.

쌍홍굴에서 내려다보는 금산의 짙은 녹음.쌍홍굴사이로 남해 바다가 보인다.
쌍홍굴에서 내려다보는 금산의 짙은 녹음.쌍홍굴사이로 남해 바다가 보인다.

◆ 웅장한 자태의 쌍홍문

요암을 지나 보리암을 향해서 10분여를 더 걷자 상주해수욕장에서 올라오는 등산로를 가로질러 쌍홍문이 웅장한 자태를 들어낸다. 쌍홍문은 거대한 바위에 구멍 2개가 뚫린 것을 말한다. 산을 내려갈 때는 오른쪽이며 올라올 때는 왼쪽으로 난 굴을 통과할 수 있다. 산발치에서 올라온 등산객이 거친 숨을 고르며 잠시 쉬어가는 자리로 안성맞춤이다. 게다가 굴 안의 북쪽 벽으로 구멍 3개가 뚫려있어 재미삼아 돌을 던져 넣으며 쉬기 좋은 자리다. 전설에 따르면 구멍 3개에 돌을 던져 차례로 들어가면 금산 산신령이 소원 한 가지를 들어준다고 하다.

쌍홍문 바로 앞에는 장군암이 있다. 장군이 검을 짚고 봉을 향하여 서 있는 형상을 하고 있어 장군암이라 붙여졌다. 금산의 첫 관문인 쌍홍문을 지키는 장군이라 하여 수문장이라 부르기도 한다. 장군암의 머리 위로는 수 백 년 된 넝쿨식물로 송악이 자란다고 한다.

쌍홍문에서 보리암을 오르는 길 오른쪽 바위위쪽으로 음성굴이 있다. 만장대(萬丈臺)바로 위쪽으로 높이 2m, 길이 5m의 바위굴로 성음굴이라 부르기도 한다. 음성굴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는 사람들을 노래 부르게 하고 춤추게 하는 신비한 힘이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전까지는 상주해수욕장코스를 통해서 금산 보리암을 올랐다. 건강을 생각하고 체력단련이 목적이라면 더 없이 좋은 코스다. 때로는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둘러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금산에 오롯이 나를 내 맡긴다면 금산이 내어주는 넉넉한 품에 들 수 있는 것이다. 금산이 간직한 세월에 헤아리고 금산의 주름살을 보고 금산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글·사진 이원선 시니어매일 선임기자 lwonss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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