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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현장] 가스공사, 농구단 운영에 열정 보여줘야

채원영 경제부 기자

프로농구 대구 오리온스가 2011년 6월 14일 새벽, 전용구장인 북구 산격동 대구체육관 내 사무실의 짐을 빼 고양으로
프로농구 대구 오리온스가 2011년 6월 14일 새벽, 전용구장인 북구 산격동 대구체육관 내 사무실의 짐을 빼 고양으로 '야반도주'하면서 겨울 프로 스포츠의 명맥이 끊어졌다. 매일신문DB
채원영 경제부 기자
채원영 경제부 기자

지난달 9일 한국가스공사는 호텔인터불고 대구에서 열린 협약식에서 인천 지역 농구단 인수를 공식화했다. 당시 가스공사는 "지역 주민과 소통하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라고 농구단 인수 목적을 밝혔다. 채희봉 가스공사 사장 또한 "사장이기 이전 한 사람의 프로농구 팬"이라고 했다.

그러나 한 달 가까이 흐른 현재, 가스공사의 농구단 인수 과정을 바라보는 시각은 곱지 않다. 일련의 과정들을 보면 가스공사가 농구단 운영에 얼마나 주체적인 열정이 있는지 의문이다.

발표 시기부터 꼬였다.

한국프로농구연맹(KBL)은 지난 1일 김희옥 신임 총재가 3년의 공식 임기를 시작했다. 가스공사의 농구단 인수 발표도 8월로 예정됐지만, 집행부 교체를 이유로 앞당겨졌다. 가스공사는 KBL에 등 떠밀려 연고지도 확정하지 못한 채 발표를 서둘렀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연고지 미확정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재 가스공사와 대구시는 농구단 전용 구장 신축을 연고지 협약서에 얼마나 명확하게 표현할지 여부를 두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대구시는 '조속한 시일 내에 신축 구장을 건립한다'는 표현으로 구장 건립을 못 박고 싶어 하지만, 가스공사는 '신축 구장 건립을 위해 노력한다'는 정도의 표현을 원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가스공사는 정부 예산을 받는 공기업이라 상당한 돈이 드는 구장 신축을 협약서에 명기하는 것은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섣불리 신축을 약속했다가 결과적으로 거짓말을 하게 되는 상황을 우려하는 것이다.

대구시 관계자는 "가스공사와 함께 산업통상자원부와 기획재정부를 설득하고 있다"고 했지만 여전히 언제쯤 연고지가 발표될지는 미지수다.

이런 상황에서 선수단은 인천에 짐을 풀고 훈련을 시작했고, 인천시가 가스공사에 연고지 승계를 요청했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오며 대구 농구 팬들은 불안감에 휩싸였다.

가스공사 관계자는 "공식 요청이 들어온 것은 아니다"면서도 "(인천시의) 공식 제의가 있으면 검토할 여지는 있다"고 시즌을 인천에서 시작할 가능성을 열어 뒀다.

예정대로 가스공사와 대구시가 연고지 협상을 갈무리하고 인수를 공식화했다면 피해 갈 수 있는 논란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가스공사가 악화한 재무 사정에도 무리하게 농구단 인수를 추진한 것 아니냐는 얘기마저 나온다.

가스공사는 지난 2019년 583억 원의 순이익을 냈다가 지난해 코로나19와 국제 유가 하락 등의 영향으로 1천607억 원 적자 전환했다. 같은 기간 매출도 4조 원가량 줄었다. 가스공사의 지난해 부채비율은 364%로 글로벌 가스기업 수준의 부채비율(280%)에 크게 못 미친다.

가스공사는 그간 대구로 본사를 이전하고도 "지역 경제에 기여하는 것이 없다"는 정치권과 지역사회의 비판을 받아 왔다. '대구 가스공사 농구단'을 출범시키는 것은 한 방에 이런 지적을 불식시킬 수 있는 '신의 한 수'였지만, 이제는 효과가 떨어지게 됐다.

대구 농구 팬들은 지난 2011년 대구 오리온스(현 고양 오리온)의 갑작스러운 연고지 이전으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간직하고 있다. 10년 만에 대구에 프로농구단이 생긴다는 팬들의 기대는 점차 의문과 실망감으로 바뀌고 있다.

가스공사가 진정으로 지역사회에 기여하고 싶고 그 방안으로 농구단 운영을 택한 것이라면, 서둘러 대구를 연고지로 확정하고 시즌 준비에 전념해야 한다. 그렇게 '농구를 사랑하는 가스공사'의 모습을 보여 줄 때 가스공사도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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