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학 도서관을 가다-경북대] <26> 추산 노이점이 쓴 ‘수사록(隨槎錄)’

'열하일기'에 생략된 사행의 全 경로 담겨
5개월 걸친 연행의 과정 기록…두 달 못 미친 '열하일기' 보완
박지원과 개인적 관계도 나와

수사록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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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는 험준한 산봉우리를 여러 번 넘고 길이 매우 험했으며, 변방인데다 바람과 모래가 없는 날이 없고 뛰어난 경치도 달리 없으니, 아름다운 곳은 아니다. 건륭이 살고 있는 궁전은 '피서산장(避暑山庄)'이라는 편액을 썼고, 황금 기와로 덮었으며 궁 밖에는 약간의 암석이 있지만 기이하지는 않다."

이 글은 추산 노이점(盧以漸)이 쓴 '수사록'에서 열하(熱河) 모습을 기록한 것이다. 저 유명한 '열하일기'는 연암 박지원이 1780년(정조 4) 청나라 건륭제의 칠순을 축하하기 위해 사행한 삼종형 박명원을 수행해 열하를 다녀온 후 쓴 견문기이다. 청조치하의 북중국과 남만주 일대의 풍속과 함께 그곳 문인들과의 교유 등이 유려한 필치로 흥미롭게 기술돼 있다. 박지원의 실학사상이 잘 나타나 있는 풍자소설 '허생전'도 여기에 실려 있다.

'수사록' 역시 노이점이 박지원 등과 함께 사행의 수행원으로 따라갔다 온 것을 기록한 것이다. 그는 사신의 일을 돕던 무관 벼슬인 상방비장(上房裨將)의 신분으로 열하를 다녀왔다. 그러나 이 일기는 '열하일기'와 시각이 전혀 다르다. '열하일기'가 사대론과 북벌론을 극복해야 한다는 북학파의 입장에 서 있다면, '수사록'은 존명배청의식을 기조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주식 변발을 보면서 안타까워했던 것은 바로 여기에 연유한다.

'수사록'은 '열하일기'를 보완하고 있어 주목할만하다. '열하일기'가 1780년 6월 24일부터 8월 9일까지의 두 달에 못 미치는 기록을 담고 있는데 비해, '수사록'은 1780년 5월 25일부터 10월 27일까지의 약 5개월간에 걸친 연행의 모든 과정을 빠짐없이 기록하고 있다. 예컨대, '열하일기'에는 북경에서 한양까지 돌아오는 과정과 한양에서 의주까지의 과정이 생략되었지만, '수사록'은 사행의 전 경로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박지원과의 관계도 기록하고 있어 흥미롭다. "지난밤 나는 연암과 함께 지구와 해, 달, 별들이 자전하면서 운행하는 것과 사해(四海)와 육합(六合), 팔황(八荒)의 드넓음에 대해 논했다. 그 이론이 새롭고 신기하고, 크고 넓어서 앞 시대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봤으니 오히려 위대하지 않은가"라고 하면서, 자신이 지니고 있던 전통주의적 천원지방론(天圓地方論)에 어떤 균열이 생기고 있음을 고백하기도 한다.

박지원의 '열하일기'와 함께 읽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또 다른 열하일기 '수사록'! 이 책은 필자가 고문헌을 연구하던 80년대 후반쯤 우연한 기회에 입수한 것이다. 공주 지역에 있는 세칭 노장군가(盧將軍家)의 자료 일부가 시중에 흘러들면서 필자와 인연이 닿았다. 이 책을 입수한 후 한동안 밀쳐두었다가 1996년경에 자세하게 검토할 기회가 있었다. 그 결과를 필자는 처음으로 학계에 보고했고, 이후 주목할만한 연구들이 지속적으로 나왔다.

경북대학교 도서관 고서실에는 6만여점에 달하는 고서와 다양한 고문서들이 소장돼 있다. 여기에는 필자가 경북대학교에 재직 시절 기증한 6천200여책의 고서와 3천책에 가까운 고서 복사본들이 포함돼 있다. 오늘 소개하는 노이점의 '수사록'은 박지원의 '열하일기'와 비교하며 읽으면 매우 흥미로운데, 특히 이 책은 경북대학교 도서관의 100만 권째 장서로 등록되는 영예를 안은 자료이기도 하다.

남권희 전 경북대 교수

수사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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