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이건희 미술관, 서울 건립 철회하고 새 기준으로 선정해야

문화체육관광부가 공모 절차도 없이 '이건희 미술관'(이건희 기증관) 건립 후보지를 서울 2곳(용산·송현동)으로 압축한 것과 관련, 황희 문체부 장관은 "공모를 했다면 행정력이라든지 여러 비용, 공모 기간 치열한 경쟁 등이 있었을 것이다. 공모에서 (탈락이) 결정됐을 때 허탈감이 더 클 것이다"고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밝혔다.

공정한 기준, 투명한 절차에 따른 공모에서 '탈락'했다면 '허탈'해도 수긍할 수 있다. 황 장관의 발언은 '이건희 미술관' 유치전에 뛰어든 40여 개 지자체에 대한 능멸이다. 나아가 문화 균형발전과 공평한 문화 향유를 갈구하는 비수도권 2천800만 국민들의 열악한 처지를 철저히 외면하는 문재인 정부의 수도권 일극 시각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이다.

황 장관은 인터뷰에서 '국가 전체의 이익을 고려했다'고 했다. 황 장관이 그토록 강조하는 '빌바오 효과'(랜드마크 건축물이 쇠락해 가는 어떤 도시를 다시 번성하게 하는 힘)가 '이건희 미술관'을 서울에 건립할 경우와 지방 도시에 건립할 경우 중 어느 쪽에 더 광범위하게 나타나겠는가? 황 장관의 말은 결국 국가 발전이 아니라 서울 발전을 택했다는 말 아닌가. 서울에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등이 있는 만큼 '이건희 컬렉션'을 서울에 두면 연구와 보존 관리에 유리하다. 접근성도 낫다. 하지만 그런 잣대로 하자면 모든 문화시설은 서울에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이건희 컬렉션'은 문화재나 미술에 한정되지 않는다. 미술 영역을 넘는 연구와 발전, 확장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이번 후보지 선정에서는 미술 분야와 접근성 분야가 평가의 중심이었다. 근시안적이고 퇴행적이며, 편의주의에 입각한 평가라고 볼 수밖에 없다.

당장의 접근성을 이유로 이건희 미술관 건립지를 서울로 결정하겠다는 것 또한 정부 역할을 포기하겠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정부는 '밀실 결정'을 철회하고, 지방 각 도시들이 공감할 수 있는 새로운 원칙을 마련하고, 공정하고 투명하게 공모 및 선정 절차를 다시 진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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