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 앞마당에는 두 단어가 새겨져 있었다. '그노티 세아우톤'(Gnothi Seauton), 바로 '너 자신을 알라'는 경구(警句)다. 그노티는 우리말로 지식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 knowledge의 어원이다.
소크라테스는 이 오래된 격언을 젊은이들에게 설파했다가 모함을 받았다. 흔히 말하듯 '분수를 알라'는 훈계였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테다. 청년들이 경직된 사회적 율법 대신 내면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그의 사상이 불온(不穩)하다는 게 사형 이유였다.
약사인 오강정혜(48) 씨는 최근 대구 칠곡경북대병원 앞에 갤러리, 필라테스 교실, 소규모 공연·문화강좌 교실로 꾸며진 '공간 봄'(북구 학정로 551-50)을 열었다.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처럼 모두가 자신을 돌아보면 좋겠다는 뜻에서다. 이름에는 예술 감상(seeing)은 물론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spring), 보살핌(care)의 공간이라는 중의(重義)가 담겼다.
"저도 그랬지만 코로나19로 우울감을 호소하는 분들이 주변에 참 많잖아요. 암 전문으로 특화된 칠곡경북대병원을 찾는 환자들은 물론이고. 낙담한 채 숨막히는 시간들을 그저 묵묵히 보내야 하는 분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치유가 되는 공간을 선물하고 싶었습니다."
2층 갤러리(일요일 휴관)는 문화예술 지원사업을 통한 사회 환원을 목표로 한다. 8월 15일까지 이어지는 개관 기념전의 주제 역시 회복과 힐링, 생명 탄생을 상징하는 정원사(gardener)다. 독일 출신인 베른트 할프헤르 중앙대 조소과 교수와 권자연·윤정선·전은숙·제유성·주영신 작가의 작품 30여 점이 전시 중이다.
3층에선 필라테스 수업으로 생활의 건강한 변화를 추구한다. 전문 트레이너 6명이 운동을 통한 통증 완화, 체중 감량, 체력 강화를 돕는다. 4층 '스페이스 봄'에선 무대예술 기획공연과 함께 악기·꽃꽂이·캘리그래피 등 다채로운 강좌를 진행할 예정이다.
팬데믹 시대답게 각종 바이러스와 세균, 유해물질을 제거하는 공기제균기까지 꼼꼼하게 설치한 이곳은 그의 버킷 리스트(bucket list·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 가운데 하나였다. 이웃들에게 예술적 경험과 함께 쉼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사회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이다. 필라테스를 비롯한 각종 강좌를 시중보다 훨씬 저렴한 값에 이용토록 한 것도 그런 배려다.
"사실 10여 년 전 암 판정을 받고 투병했던 제 경험이 여기까지 오게 했습니다. 당시 부모님이나 남편이 걱정할까 봐 힘들다, 아프다는 말조차 꺼내지 못하면서 스스로 힐링할 수 있는 시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이곳이 인근 대학병원에서 수고하는 모든 분들의 휴식처가 되고, 동네 주민들이 웃으면서 만나 희망을 이야기하는 사랑방이 되길 바랍니다."
'궁핍한 자에게 나눠줄 때 나팔을 불지 말라'는 예수님의 산상수훈(山上垂訓)처럼 그는 조용히 하지만 지속적으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해왔다. 누군가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되면 거액의 후원금을 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자녀들의 손을 끌고 적도의 뜨거운 태양 아래 자원봉사자로서 구슬땀을 흘린 것도 여러 차례다. 그는 가족도 잘 모르는 내용이라며 기부액만큼은 밝히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이웃에 대한 오 대표의 따뜻한 관심은 동네 분위기를 밝게 만드는 데에도 일조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아파트 입구 채소가게에서 넉넉하게 산 야채를 빵가게에 나눠주거나, 커피숍에서 여분의 커피를 주문해 채소가게에 보내주는 식이다. 코로나19로 온라인쇼핑이 증가하면서 점점 위축됐던 골목 상권엔 그의 선한 영향력 덕분에 다시 웃음꽃이 피어났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늘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셨던 부모님의 영향이 참 큰 것 같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동네 어르신들을 모셔서 함께 식사를 하는 바람에 어렸을 때는 저희 가족끼리만 밥 먹은 기억이 없을 정도니까요. 또 부산 태종대에 있던 저희 집은 근처 대학교의 가난한 학생들 사이에 무료 하숙집으로 유명했지요. 더불어 사는 삶이야말로 진정 가치 있는 삶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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