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버스극장의 추억을 소환하다

최민우 수성아트피아 공연기획팀장
최민우 수성아트피아 공연기획팀장

어린 시절 버스극장에서 인형극을 관람한 기억이 있나요? 1990년대 초, 내가 살던 경북 김천에는 일주일에 한 번 버스극장이 아파트 단지를 찾아왔다. 어렴풋이 어릴 적 기억을 생각해보면, 버스극장은 열 개 동으로 구성된 아파트단지 내 상가들이 모여 있던 5동에서 어린이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래된 기억이라 어떤 작품을 봤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버스 뒷문으로 입장하면 검은 천으로 버스 내부가 장식되어 있었고, 운전석 뒤편에 마련된 무대에서 인형극을 본 장면이 떠오른다. 친구들과 함께 놀이터를 가고, 주차된 자동차 바퀴를 베이스 삼아 했던 야구, BB탄 총 게임, 동과 동 사이를 누비며 탔던 롤러와 함께 버스극장이 기억나는 걸 보면 꽤 좋아했던 것 중 하나였나 보다.

지금도 버스극장이 있을까? 세상이 빠르게 변하면서 문화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는 매체가 다양해졌고, 선호하는 콘텐츠를 개인적으로 소비하는 시대로 변화했다. 요즘 아이들은 부모의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보는 것이 일상이기에 버스극장은 상상할 수 없는 먼 옛날의 이야기일 것이다.

대구경북에서 아동극, 인형극이라고 하면 백화점 문화센터, 소극장에서 열리는 '신데렐라', '인어공주', '겨울왕국' 등을 생각한다. 그리고 백화점에서 젊은 여성 고객을 유치하고자 그들의 자녀를 위해 제공되는 콘텐츠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주위를 둘러보자. 서울에는 '종로아이들극장'이 있다. "내 아이의 첫 번째 문화 경험, 어린이 전용극장에서 시작하세요!"라는 슬로건으로 문을 연 전국 최초 어린이 전문 공연장이다. 춘천인형극장도 눈에 띈다. 올해로 33회를 맞는 춘천인형극제가 열리는 곳이다. 우리나라 인형극을 발전시키고, 세계 인형극의 중심을 표방한다. 세계 최대의 문화공연 축제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도 3주간 세계적인 대가부터 청년 예술인들의 다양한 인형극이 열린다.

최근 지역에서도 좋은 변화가 느껴진다. 대구문화예술회관은 지난 5월 어린이날을 맞아 '토돌이의 모험'을 제작했고, 어울아트센터는 인형극 '내 친구 송아지'를 공연하는 등 아동을 위한 프로그램이 늘고 있다.

수성아트피아에서도 초여름, 가족을 위한 아동·청소년 공연 예술 축제 '아시테지 IN 대구'를 준비하고 있다. 올해로 29회를 맞은 국제 여름 축제는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서울 외 대구, 광주 등에서 동시 개최된다. 세계적 권위의 협회와 함께 주관하는 아동·청소년 공연예술 축제가 대구에서 열리니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올해 첫 '아시테지 IN 대구'를 시작으로 지역에서도 수준 높은 아동·청소년극 공연이 늘어나고, 훗날 어린이 전용극장이 설립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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