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기의 필름통] 리뷰 '아이스 로드'

영화
영화 '아이스 로드'의 한 장면

'공포의 보수'(The Wages Of Fear, 1953)라는 영화를 기억하는가?

프랑스 배우 이브 몽땅이 주연한 영화다. '고엽'을 부른 그 이브 몽땅이 맞다. 프랑스인 마리오(이브 몽땅)는 남미의 시골 오지까지 밀려온 실패한 인생의 사나이다. 어느 날 미국인이 개발하는 유전에서 화재가 발생한다. 폭탄의 원료인 질소를 쏟아 부어 산소를 고갈시키는 것이 유일한 화재 진압 방법이다.

그러나 질소는 작은 충격에도 폭발하는 민감한 물질이다. 거액의 보수를 내걸고 질소를 운반할 트럭 운전사를 모집한다. 여기에 마리오를 비롯해 4명의 지원자가 나선다. 목숨을 담보로 일확천금을 노린 막장 인생들이다. 이들은 끊어진 다리를 건너, 정글을 뚫고 조금씩 나아간다. 죽음의 공포는 시시각각으로 다가오고, 이들은 오직 그 보수만을 꿈꾸지만 운명은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곧 터질 것 같은 위험과 벼랑 끝에 선 인간군상의 모습, 삶의 허무함 등을 잘 그려낸 수작 영화다. 70년이 다 된 영화지만 지금 봐도 공포와 서스펜스는 탁월한 작품이다.

21일 개봉 예정인 '아이스 로드'(감독 조나단 헨슬레이)는 '공포의 보수'를 차용한 스릴러 영화다.

캐나다 매니토바 주의 다이아몬드 광산이 폭발해 26명의 광부가 갱도에 매몰된다. 이들을 구할 유일한 방법은 산소가 고갈되기 전 구조용 파이프로 이들을 구하는 것이다. 파이프를 운송할 대형 트레일러 운전자를 모집한다. 이라크 파병 후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앓고 있는 동생을 보살피기 위해 돈이 필요했던 마이크(리암 니슨)가 여기에 합류한다.

가장 큰 난관은 이들이 가야할 길이 땅이 아니라 얼음이고, 이때가 얼음이 곧 녹기 시작하는 4월이라는 점이다.

영화의 배경이 된 장소는 미국 오대호 바로 위쪽에 위치한 캐나다령 위니펙 호수다. 겨울에는 영하 50도로 내려가 호수 위로 얼음길(아이스 로드)이 열리는 곳이다. 길이만 425km로 서울-부산 거리보다 더 길다.

영화
영화 '아이스 로드'의 한 장면

영화가 시작하면서 비장한 음악과 함께 아이스 로드의 실체가 드러난다. 공중 촬영과 얼음 속 장면 등을 통해 전 세계 유례가 없는 도로의 모습을 관객에게 웅장하게, 소름 돋게 전해준다.

아무리 두텁다 해도 얼음은 깨어지기 마련이라, 관객에게 아이스 로드는 훌륭한 공포의 대상이 된다. 곧 녹기 시작해 폐쇄된 도로를 열고 달리기에 그 서스펜스는 더하다. 거기에 갱도의 산소가 고갈되기 전 30시간이라는 타임라인까지 설정됐다.

'아이스 로드'는 한 여름 무더위에 관람하기 좋은 영화다. 온통 얼음과 눈뿐이고, 눈사태에 거센 눈바람이 스크린을 가득 채우니 아이스바를 먹는 것처럼 시원하다. 배우들이 차가운 얼음물에 빠지는 장면에서는 온몸이 오싹해진다.

그러나 '아이스 로드'는 그것이 전부다. 얼음길이라는 설정에만 최대한 의지한 서스펜스 영화다. 광부들을 구할 트레일러 트러커들을 위험에 빠트리는 것이 혹독한 자연만이 아니라는 것이 더해질 뿐이다. 이 사실을 안 순간부터 아이스 로드가 가진 위험한 서스펜스와 긴장감은 사라진다. 인간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자연의 힘이, 한낱 인간의 농간과 어깨를 견주면서 영화는 여느 액션영화와 다를 바가 없어진 것이다.

이와 함께 위대한 인간의 승리라는 휴머니즘도 색을 잃는다. 왜 아이스 로드라는 천혜의 서스펜스 재료를 이렇게 낭비할까. 혹독한 자연을 뚫고 인간을 구한 위대한 승리의 스토리를 왜 액션의 상투성으로 덮어버릴까 아쉬움이 남는다.

영화
영화 '아이스 로드'의 한 장면

'아이스 로드'가 또 하나 기댄 것이 배우 리암 니슨이다. '테이큰'(2008)을 비롯해 숱한 영화에서 듬직한 캐릭터를 맡아 관객의 호응을 얻었다. '아이스 로드'에서도 예의 그 면모가 그대로 담겨 있다. 또 한 명 '매트릭스'(1999)의 로렌스 피쉬번까지 가세했다.

'공포의 보수'는 치열한 인간의 본성을 보여준다. 그것이 헛된 욕망이라는 것과 함께 미국 대자본의 이익 추구라는 자본주의까지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뭐 그렇게 까지야" 할 필요가 없다고 양보를 해도, '아이스 로드'는 자연재해와 맞서는 서스펜스를 버리고, 타락한 기업성이라는 진부하며 편협한 오락성으로 방향을 급선회한다.

식재료도 좋고, 양념까지 훌륭한데 나온 음식이 돋보이지 않는다면 요리사의 잘못이 크다. '쥬만지'(1995), '다이하드3'(1995), '세인트'(1997) 등의 각본가 조나단 헨슬레이가 이번에는 연출까지 맡았는데, 과한 욕심이었던 것 같다. 110분. 12세 이상 관람가.

김중기 문화공간 필름통 대표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