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학 도서관을 가다-경북대] <27> 일본어 서적들

모든 것 망라하려는 1928년 발간 두 책

일본 헤본샤(平凡社)에서 나온
일본 헤본샤(平凡社)에서 나온 '세계미술전집' 제 32권 내표지

사실은 일본의 근대문학 비평가 고바야시 히데오의 책인가 싶어 찾아갔다. 문학비평가가 '희랍고대문화사'라는 책을 썼을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경북대 도서관 5층 연중당 문고로 향했던 것이다. 그러나 '희랍고대문화사'를 쓴 사람은 1928년 당시 릿쿄 대학의 서양사학자 고바야시 히데오였다. 동명이인이었던 것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 역시나'로 변했지만 그래도 어떤 책인지 살펴봤다. 먼지와 곰팡이로 얼룩진 책을 찾아준 직원의 성의를 생각해 머리말과 목차를 훑어보았다. "최근 우리나라(일본을 말함-필자)에서 고전 연구가 발흥해서 기쁘다. 과학의 진보와 맞물려 사적 고찰의 방법이 계속 발달했기 때문에 고전 해석은 종래와 완전히 달라졌다고 믿는다." 요컨대, 일본의 고전을 과학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희랍고대문화사'를 쓴다는 것이겠다. 총 28장으로 된 이 방대한 책은 고대 그리스의 발생부터 몰락, 종교와 신화, 생활까지 총망라하고 있었다. 지금의 시선으로 보면 단순한 사실의 나열에 가깝지만, '희랍고대문화사'는 그야말로 고대 그리스의 '모든 것'을 정리하겠다는 욕망으로 가득 찬 책이었다.

고바야시 히데오(小林秀雄)의
고바야시 히데오(小林秀雄)의 '희랍고대문화사'(1928) 내표지

그런데 이 욕망은 도서관의 개인 기증자들의 컬렉션을 닮았다. '희랍고대문화사'도 사실은 경희대 사학과에 재직하셨던 박성봉 교수의 방대한 자료 가운데 하나였거니와, 몇 주 전에 방문했던 취암 문고도 마찬가지였다. 취암 문고는 대구의 사업가 취암 엄상수 선생께서 1960년대부터 수집해온 고도서 등의 자료를 경북대 도서관에 기탁해 이뤄진 문고다. 전통 문화에 대한 깊은 애착을 바탕으로 수집한 자료는 고서 1만1천910책, 고문서 8천732장에 달한다고 한다. 그곳에서 궁금했던 것은 '후기인상파와 신인상파'(1928)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전통 문화 컬렉션 속에서 그런 제목의 일본어 책이라니, 왠지 어울리지 않았다. 워낙 귀중한 자료가 많다보니 5층 취암 문고 내부에서만 그 자료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살펴보니 이 책은 1927~1930년 일본 헤본샤(平凡社)에서 나온 '세계미술전집' 총 36권 가운데 32권, '후기인상파(下)와 신인상파, 메이지 다이쇼 시대''다. 이 전집도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그리스, 로마, 중세 유럽은 물론 한국, 중국, 일본의 회화, 조각, 건축 등을 총망라하는 기획으로 탄생했다. 그중 하나였던 제 32권은 원색판 10, 단색판 186개의 작품 사진과 함께, 여러 작가의 해설이 덧붙여진 도록(圖錄)형태의 책이었고, 나온지 100년이 되어가는 책이 이렇게 깨끗할까, 싶을 정도로 보존이 잘 돼 있었다.

사실은 '후기인상파와 신인상파'도 내가 기대했던 내용은 아니었다. 사진이나 영화와 같은 새로운 테크놀로지에서 탄생한 예술이 회화나 소설과 같이, 상대적으로 오랜 예술을 어떻게 변화시켰을까, 라는 호기심을 조금이나마 풀고 싶었다. 그러나 취암 문고의 '후기인상파와 신인상파'는 '세계미술전집' 제 32권의 도록(圖錄)이었다. 그래도 고바야시 히데오의 '희랍고대문화사'와 헤본샤 판 '세계미술전집'은 또 다른 상상력을 자극했다. 1928년에 나온 이 두 책에서 '모든 것'을 망라하려는 욕망은 과연 우연일까. 그것은 경북대 도서관 5층에 자리한 연중당 문고와 취암 문고를 가능하게 했던 욕망과 일맥상통하지 않을까. '되도록 많은 것'을 모으겠다는 욕망이 얼마나 우리들의 도서관을 풍성하게 하는지, 깨닫는 순간이었다.

이원동 경북대 교수

일본 헤본샤(平凡社)에서 나온
일본 헤본샤(平凡社)에서 나온 '세계미술전집' 제32권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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