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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불편의 공존" 장애인 40%가 원하는 '탈시설화'의 두 얼굴

대구 시설 장애인 3천374명에도 탈시설 인원은 144명 뿐
대구 장애계 "대구시 탈시설 지원 확대 절실"

15년 간의 시설생활을 마치고 대구 남구 탈시설 장애인 자립주택에 입주한 청각장애인이 옷가지를 정리하고 있다. 매일신문 DB
15년 간의 시설생활을 마치고 대구 남구 탈시설 장애인 자립주택에 입주한 청각장애인이 옷가지를 정리하고 있다. 매일신문 DB
탈시설 장애인 이수나 씨가 노트북을 이용해 업무를 보고 있다. 최혁규 기자
탈시설 장애인 이수나 씨가 노트북을 이용해 업무를 보고 있다. 최혁규 기자

'장애인 탈(脫)시설화'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탈시설화는 장애인이 자립에 대한 의지를 갖고 시설에서 나와 생활하는 것을 말한다.

대구 장애인단체는 대구시의 탈시설 지원 확대를 촉구하고 있지만, 복지계 등에서는 급격한 탈시설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시설에서 나와 자립하려는 장애인들의 요구가 커지고 있지만, 실제로 성공한 사례는 많지 않다.

지난해 기준 대구의 시설 이용 장애인 3천374명 중 자립한 인원은 144명에 그쳤다.

◆"탈시설 자유롭고 행복…불편한 점도"

중증 뇌병변 장애인 이수나(42) 씨는 시설에서 나와 혼자 생활한 지 11년째다. 대구에서 중증·지체 장애인의 탈시설이 본격화된 것이 2015년부터임을 감안하면 이 씨는 탈시설을 꿈꾸는 다른 장애인들에게 '선구자'나 다름없는 셈이다.

이 씨의 탈시설은 우연한 계기로 시작됐다. 평생을 시설에서 살아온 그에게 어느 날 한 시설 종사자가 '단기 체험홈'을 제안한 것이다. 체험홈에서 그는 다른 세상을 맛봤다고 했다.

이 씨는 "시설에서는 야간에는 관리할 사람이 없어 외출이 불가능하다. 단기 체험을 하면서 경북대에서 야경을 봤는데 너무 아름다웠다. 그래서 탈시설하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고 말했다.

체험홈에 함께 살던 동료들도 "수나야, 너는 혼자 살 수 있다"며 독려했다.

그가 시설을 나온 후 겪은 가장 큰 변화는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는 점이다. 공간이 생기자 가장 먼저 시작한 건 공부였다. 탈시설 후 4년 동안 공부에 매진한 그는 사회복지를 전공해 현재 장애 인식 개선사업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물론 불편한 점도 적잖았다. 중증 뇌병변장애를 가진 그는 여전히 식사와 가사 등 일상생활 대부분에서 활동지원(도움)이 필요한 상태다. 지자체가 지원하는 활동지원 시간이 10년 전 8시간에서 현재 15시간으로 크게 늘었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난감한 상황과 종종 마주친다.

이 씨는 "먹는 건 줄일 수 있는데 문제는 화장실이다. 활동지원사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야간에는 누워있는 자리에서 해결을 해야 하는 상황이 있는데, 너무 슬프다"며 "힘들 땐 시설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럴 때마다 탈시설하면서 내가 누릴 수 있는 부분을 생각하면서 버틴다"고 말했다.

25년 이상을 시설에서 다른 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해 온 이 씨에게 혼자 사는 환경은 낯설었다. 주변에서는 이 씨가 외롭지는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다.

이 씨는 대구 내 탈시설 장애인이 100명을 훌쩍 넘긴 지금은 전혀 외롭지 않다고 했다. 그는 대구 탈시설 장애인 모임 'IL클럽'의 리더를 맡고 있다. IL은 자립(Independent living)의 약자다. '꽃분이'라는 이름을 가진 강아지도 새 식구가 됐다.

이 씨는 "시설에서 나온 사람들과 서로 만나고 도우면서 사는 기쁨을 느낀다"며 "같은 곳에 가도 시설에 있을 때와 탈시설 후에는 느낌이 전혀 다르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다른 동료들과 함께 제주도에 여행을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420장애인차별철폐대구투쟁연대가 지난 4월 대구시청 앞에서 장애인의 탈시설 지원 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연 뒤 가두행진을 하고 있다. 매일신문 DB
420장애인차별철폐대구투쟁연대가 지난 4월 대구시청 앞에서 장애인의 탈시설 지원 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연 뒤 가두행진을 하고 있다. 매일신문 DB

◆지역 장애인, 탈시설 축소 우려

대구시는 서울시와 함께 탈시설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지자체로 꼽힌다. 앞서 2015년 대구시의 1차 탈시설 사업에서 장애인 131명이 탈시설을 했다. 당초 목표였던 100명을 훌쩍 넘긴 수치다. 시는 작년부터 2024년까지 683억원을 투입해 200명 탈시설을 목표로 2차 탈시설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시 방침에도 지역 장애인단체는 탈시설 정책 축소를 우려하고 있다. 최근 시가 보건복지부의 자립생활주택 지원 공모사업에 참여하지 않기로 하면서 사실상 탈시설 목표 달성이 어려워졌다는 이유에서다. 이를 두고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지난 13일 대구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해 대구시의 탈시설 정책 추진을 촉구하기도 했다.

조민제 대구장애인차별연대 집행위원장은 "대구시에 따르면 2차 탈시설 사업에서 신규 공급 물량은 5년 동안 39곳에 불과하다. 대구시는 보건복지부 사업에 공모해 안정적인 탈시설을 추진할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며 "탈시설에 대한 대구시의 진정성이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대구시에 탈시설 장애인에 대한 지자체 차원의 일자리 지원을 촉구하고 있다.

조한진 대구대 장애학과 교수는 "탈시설 지원에서 중요한 것이 집과 활동보조, 일자리 지원이다. 대구시는 일자리 지원이 전무한 상황이다. 서울시처럼 공공일자리를 확대해 장애인들을 지원해야 한다"며 "전세계 어느 나라도 완벽하게 준비하고 탈시설한 곳은 없다. 시스템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탈시설 추진을 병행하면서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시는 예산부담이 큰 상황이라면서도 과거보다 확대된 규모의 탈시설 지원을 2024년까지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대구시 관계자는 "탈시설의 경우 예산을 확보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정부 사업에 참여하지 않은 것은 현재 추진 중인 제2차 장애인 탈시설 자립지원 사업에 집중하자는 취지"라며 "내년부터 탈시설 장애인 일자리 지원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장애인의 날(4월20일)을 앞두고 420장애인차별철폐대구투쟁연대가 15일 대구시청 앞에서 장애인의 탈시설 자립생활권리 보장, 주거권 보장, 건강권 보장, 활동 지원 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연 뒤 가두행진을 하고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imaeil.com
장애인의 날(4월20일)을 앞두고 420장애인차별철폐대구투쟁연대가 15일 대구시청 앞에서 장애인의 탈시설 자립생활권리 보장, 주거권 보장, 건강권 보장, 활동 지원 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연 뒤 가두행진을 하고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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