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20 도쿄 올림픽'이 지난 23일 개막해 보름여 간의 대장정에 올랐다. 대한체육회가 이끄는 한국 선수단은 개막 전부터 '이순신 장군 현수막' 사태를 일으키며 올림픽 붐(?) 조성에 나섰다.
"신에게는 아직 5천만 국민들의 응원과 지지가 남아 있사옵니다." 도쿄 올림픽 선수촌 내 대한민국 선수단 숙소에 걸린 이 현수막은 민간인 체육회로 우리나라 체육회 시스템이 바뀐 후 처음으로 올림픽에 출전하는 대한체육회의 결연한 의지 표명이다. 한국이 좋은 성적을 내면 다행이겠지만 이전 대회보다 성적이 나쁘면 대한체육회 위상은 추락할 전망이다.
문재인 정부가 '성과'보다 선수 인권 보호 등 '과정'을 중요시하는 체육 정책을 펴 왔기에 한국이 이번 대회에서 어떤 성적을 낼 것인가는 초미의 관심사다. 우리나라 효자 종목 양궁은 24일 첫 혼성 단체전에서 이변 없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러나 이날 한국은 금메달을 예상한 사격, 펜싱, 태권도 등에서 부진, 종합 순위 경쟁에 우려를 낳았다.
대한체육회는 왜 일본의 반발이 예상되는 자극적인 문구의 이순식 장군 현수막을 내걸었고, 3일 만에 철거했을까. 일본의 욱일기 응원에 대항하는 치고 빠지는 작전이었을까. 새로 내건 '범 내려온다'는 내용을 담은 현수막도 일본을 자극하기는 다를 바 없다.
대한체육회는 일본에서 열리는 올림픽인 만큼 특별한 메시지를 준비했다고 한다. 선수들의 전의를 끌어올릴 만한 응원 문구를 찾다가 한 직원의 제안으로 이순신 장군 현수막을 준비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일본에서는 정치적인 의도가 있다며 문제 삼았고, 일본의 극우 단체는 한국 선수촌 앞에서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인 욱일기를 흔들며 시위를 했다. 급기야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한국 선수단을 찾아 현수막 철거를 요청했고, 서신으로도 '현수막에 인용된 문구는 전투에 참여하는 장군을 연상할 수 있기에 IOC 헌장 50조 위반으로 철거해야 한다'고 재차 요구했다. 대한체육회는 올림픽 경기장에서 욱일기를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조건으로 IOC와 이순신 장군 현수막 철거를 합의했다.
대한체육회는 '범 내려온다'라는 현수막을 새로 설치했으나 이에 대해서도 일본인들은 반발하고 있다. 대한체육회는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용맹스러운 호랑이를 내세워 선수단에 힘을 주고 싶어서 해당 현수막을 준비했다"고 설명하지만, 일제강점기 일본의 우리나라 수탈을 연상케 함은 부정할 수 없다.
이번 사태에 대해 국민 다수는 욱일기 사용을 거론하며 IOC의 불공평과 일본의 옹졸함을 비난하지만 정치적인 색깔을 담은 현수막를 내건 대한체육회의 궁색함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한체육회는 일본에서 올림픽이 개최되는 점을 고려, 이순신 장군 현수막을 준비했다고 밝힌 만큼 스스로 IOC 헌장 50조를 위반했다. 올림픽에 대한 국민 관심을 높이기 위해 반일감정과 민족주의에 편승했다고도 볼 수 있다. 올림픽이 상당 부분 상업성에 물들어 있지만 그래도 세계인의 스포츠 축제 아닌가. 이웃 나라에서 열리는 대회이고, 우리나라가 1988년 서울 대회에 이은 포스트 대회를 준비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현수막 문구를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다고 본다. 선수들의 전의를 끌어올리려는 순수한 의도였다고 하더라도 개최국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 일본이 욱일기를 흔들며 응원한다고 하는데 이번 대회는 무관중 대회다.
현수막 사태에 대한 정치적인 판단은 접어두고 우리나라가 어떤 성적을 낼 것인가에 주목하는 이들도 많다. 코로나19가 전 세계에 퍼져 국가적으로 스포츠 경기력의 유불리를 따질 수 없는 상황이기에 한국은 세계적인 스포츠 강국의 위상을 이번에도 유지할 것으로 기대받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 빚어진 악재가 변수로 작용할 우려가 크다. 엘리트 체육계가 성폭력을 포함한 각종 폭력과 인권 훼손 사태에 휘말리면서 '성적 지상주의'에 대한 국민의 비난이 거셌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전반적으로 엘리트 체육의 경기력이 떨어졌을 것으로 짐작된다. 스포츠 민족주의에 대한 정부와 국민의 시선도 많이 달라진 상태다.
그럼에도 스포츠는 성적으로 말한다. 부진한 성적은 패자의 변명일 뿐이고 올림픽에 대한 국민의 관심은 여전히 높다.
우리나라는 도쿄 올림픽 29개 종목에 354명의 선수단을 파견하고 있다. 선수는 232명이다. 대한체육회는 금메달 7개 이상을 획득, 종합 순위 10위권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04년 아테네 대회부터 도쿄 대회까지 5회 연속 종합 순위 10위권 진입을 노리고 있다. 한국은 2004년 아테네 대회에서 9위(금 9개), 2008년 베이징 대회에서 7위(금 13개), 2012년 런던 대회에서 5위(금 13개),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대회에서 8위(금 9개)를 차지했다. 앞선 2000년 시드니 대회에선 12위(금 8개)에 머물렀다.
한국의 출발은 좋지 않다. 개막 다음 날인 24일 우리나라는 금메달 5개 이상까지 노렸으나 양궁 혼성 단체전 첫 금메달로 겨우 체면을 세웠다. 금메달을 노린 태권도와 사격, 펜싱 등에서 기대 이하의 성적을 냈다.

의욕은 가끔 넘쳐서 문제 될 때가 있다. 대한체육회가 좀 더 차분히 도쿄 올림픽에 임하길 바란다. TV 중계로 도쿄 올림픽을 시청하는 스포츠 팬들도 이제 스포츠 민족주의에서 벗어나 균형 잡힌 세계관으로 선수들의 투혼과 경기력을 지켜보면 좋겠다. 남자 축구 첫 경기에서 이동경 선수의 악수 외면과 일본 초등학교 어린이들의 태극기 응원이 상반된 모습으로 카메라에 잡혔는데, 우리는 이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나. 페어플레이를 외면한 이동경의 잘못은 지적하고 일본 어린이들의 응원은 그 자체로 고마워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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