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다. 열섬 한 복판에 들어선듯 푹푹찐다. 코로나19가 슬그머니 다시 기승이다. 본격 휴가철을 앞두고 직장인들은 시름이 깊다. 휴가를 포기할 수도, 어딜 자유로이 다닐 수도 없으니.
북적이는 사람을 피하고, 폭염을 피하고, 복잡한 머리를 식힐 곳을 찾아 나선다. 올 여름 휴가야 말로 '비대면', '언택트' 여행이어야 한다. 전국 최고의 오지 영양군이 딱이다.
누군가는 영양을 '특별천연구역'이라 한다. 영양의 어딜 가더라도 오염되지 않고, 사람의 개발 손길에서 벗어난, 그야말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다. 자작나무 숲, 밤하늘 별빛도 좋다. 슬로시티 답게 천천히 걸으면서 세월을 거슬러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곳, 두들마을이 좋다.

◆언덕 위 꿀밤나무에 깃든 '구빈'(求貧)
영양군 석보면 두들마을은 검소함이 깃들여 있다. 대의를 굳게 가졌던 선비의 청빈한 삶이 전해져 온다. 이 마을에는 '가학'(家學)과 '구빈'(救貧)하는 삶으로 대명절의의 뜻을 편 선비 부부가 살았다. 그들의 철학은 수백년 지난 지금에도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이 마을에는 자녀와 이웃, 심지어 노비들까지 따뜻함으로 교육하고 훈화했던 여중 군자가 살았다. 어지러운 세상을 피해 영양 땅에 은둔했던 재령 이씨 문중의 석계 이시명과 그의 부인 안동 장씨 계향. 이들 부부에게 은둔은 주저앉음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었다.
이 마을 언덕 위에는 '꿀밤나무'(상수리나무·도토리나무) 여럿 그루가 자라고 있다. 몇몇은 아름드리로 자랐다. 석계 선생 부부가 1631년 이곳에다 터를 잡으면서 심었던 나무들이다. 390년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울울창창 푸른 잎은 제법 너른 그늘을 만들고 있다. 줄잡아 50여 그루다.
석계 선생과 정부인 안동 장씨는 두들마을에 들어오면서 언덕 위에 꿀밤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궁핍해진 사람들의 가난한 살림에 보태기 위해서였다.
변변하지 못한 살림이었다. 석계 선생과 아들 4남의 경학이 소문나면서 이들의 초막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접빈객'(接賓客). 꿀밤으로 끓인 죽으로 예를 다했다. 꿀밤은 궁핍한 인근 수백여 명을 구휼하는 데도 요긴하게 쓰였다.
석계 선생과 정부인 안동 장씨는 자식들에게 글 잘하는 것보다 착하게 자라는 것을 바랐다. 정부인은 물욕으로 의리를 해칠까 봐 걱정했다. 언제나 자식들에게 '의리는 소중하고 무거우며 물욕은 가벼워 걱정'이라 가르쳤다.
이 마을 앞 언덕에는 '낙기대'(樂飢臺), '세심대'(洗心臺)가 새겨져 있다. 부족함 속에서도 편안함을 추구했던 선생의 뜻과 교훈을 이어가는 듯하다.
'배고픔을 즐기라'는 낙기대는 보릿고개로 힘든 주민들을 위해 구휼식량을 배급하던 곳이었다. 장씨 부인 시절부터 광복 이전까지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은 계속됐다고 한다 .
지금도 언덕 위에 세월만큼 많은 가지를 뻗치고 있는 아름드리 꿀밤나무에는 석계 선생과 정부인 안동 장씨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교훈이 그대로 전해온다.
마을 뒷산에는 도토리공원이 조성돼 있다. 부부의 구휼하는 마음을 후손들이 이어지길 바라듯 꿀밤나무들이 산 전체에 빼곡히 자라고 있다.

◆최초 한글조리서에 담긴 '가학'(家學)
장계향 선생은 진정한 현모양처였다. 혼탁한 정치로 실의에 빠진 남편을 슬기롭게 내조해 다시 일으켜 세운 지혜로운 아내였다. 자신이 낳은 6남 2녀를 비롯해 10남매의 아들과 딸에게는 어진 어머니, 바른 어머니였다.
장계향 선생의 부친은 경당 장흥효다. 장흥효는 퇴계 이황과 학봉 김성일로 연결되는 퇴계학파의 적통을 이어받았다. 서애 류성룡과 한강 정구에게 수학한 당시 영남학파의 거두였다.
부친의 영향으로 장 선생 역시 시·서·화에 능했다. 장 선생은 불과 12살의 나이에 유가의 몸가짐과 성리학에 대한 열정 등을 적은 '경심음' '성인음' '소소음' 등 3편의 시를 창작했다. 말년에는 여성과 자녀의 몸가짐, 부모에 대한 공경, 이웃 사랑 등을 담은 시도 적었다.
장 선생은 19살 때 석계의 계실(繼室·둘째 부인)이 됐다. 장 선생은 전실인 김씨 부인의 자녀를 포함해 7남 3녀를 훌륭히 키워냈다. 일곱 아들을 '7현자'로 불리게 했으며 남편과 네 아들, 두 명의 손자가 나라의 부름을 받은 '7산림'으로 불리도록 했다.
장 선생은 한국 전통음식의 보고(寶庫)인 '음식디미방'을 저술했다. 음식디미방은 지금으로부터 약 340년 전에 쓰인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조리서다. 딸들을 위해 지은 조리서인 것이다.
국수와 만두를 비롯한 면병류, 어육류, 소과류, 주류 등의 조리법과 저장·발효·보관법 등에 이르기까지 146가지를 소개했다.
영양군은 이 조리법들을 연구한 음식을 재현해 음식디미방보존회를 중심으로 전통음식 제대로 알리기에 힘쓰고 있다.
특히, 지역의 청정자연에서 얻은 재료를 바탕으로 '음식디미방'을 세계적인 한국의 명품 음식으로 알리기 위해 애쓰고 있다.

◆수백년 거슬러 조선의 맛 여행 '문화체험교육원'
조선 500년을 통틀어 군자 칭호를 얻은 유일한 여성인 장계향 선생의 삶과 철학, 음식디미방의 맛을 배울 수 있는 '장계향 문화체험 교육원'. 이 곳은 장계향 선생을 현대로 불러온다. 다양한 선양, 교육 사업이 진행된다.
경상북도가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조리서인 '음식디미방'의 보물 지정 및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 등재 추진 등과 함께 음식디미방 명품화 사업을 본격화한 것이다.
'장계향 문화체험 교육원' 조성 사업은 3대 문화권 문화생태 관광기반 조성사업의 하나로 지어졌다. 28만6천㎡의 부지에 건축 연면적 1만9천㎡ 규모다. 전통음식전시관, 전통음식체험공간, 전통휴게공간 및 장계향 추모공간 등을 갖췄다.
체험시설로는 현존 최고의 한글조리서 '음식디미방'에 소개된 조리법을 재현해 전통음식 조리, 전통주 등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조리실습시설이 있다.
또 주변 녹음과 어우러져 휴식과 산책을 즐길 수 있는 전통한옥 체험공간도 마련돼 있다. 부대시설로 다도체험, 전통혼례, 고택음악회 등 다양한 행사와 축제장으로 활용할 수 있는 너른 마당과 주차시설이 조성됐다.
영양군은 여행상품 공동구매 방식과 1만원대 체험여행 상품 판매, 외국인 관광객과 원어민 교사들의 음식디미방 체험, 음식 방송 유튜버 초대, 한국관광공사를 통한 해외 마케팅 등을 통해 '조선의 맛' 알리기에 나서고 있다.
오도창 영양군수는 "전국 공무원 및 직장인을 대상으로 인문학 강좌, 지역 내 관광지와 연계해 문화관광시설을 탐방하는 상시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한편 전국 기관단체 워크숍, 세미나 유치로 시설 활용을 극대화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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