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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풍] 참을 수 없는 이재명 역사의식의 천박함

제20대 대통령선거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 연합뉴스
제20대 대통령선거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 연합뉴스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대한민국은 친일 세력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 지배 체제를 그대로 유지했다." 얼마 전 이재명 경기자사가 호기롭게 펼쳐 보인 역사 인식은 국내 진보 좌파들이 공유하는 '신념'이다. 그것은 남한을 '친일파가 득세한 미제(美帝)의 반식민지'로 격하하고 북한을 '항일 투사들이 세운 민족적 정통성이 있는 자주 국가'로 우러른다. 이를 신념이라고 한 것은 사실과 배치되는 이데올로기적 맹목이기 때문이다. 그 증거는 차고도 넘친다. 북한 헌법의 탄생 비밀은 그중에서도 결정적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북한 헌법은 북한이 철저히 배제된 채 소련이 설계했다. 구소련 연해주 군관구 군사위원회 위원으로, 해방 후 북한의 소련 군정을 총지휘한 테렌티 스티코프의 일기는 이를 증언한다. 1948년 4월 24일 모스크바 교외의 스탈린 별장에서 스탈린, 몰로토프 외상(外相), 즈다노프 서기, 스티코프 등이 참석한 회의에서 북한의 국가 건설, 헌법 제정으로부터 독립에 이르는 준비가 결정됐으며 북한에서는 이 자리에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북한 헌법은 1947년 11월 제3회 북한 최고인민회의 때부터 소련 헌법을 기초로 준비됐으나 일부 중요 조항은 스탈린이 직접 작성했다. 특히 북한에서 작성된 헌법안의 '임시'라는 표현도 스탈린이 삭제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북한 헌법은 1948년 9월 8일 '조선 최고인민회의'에서 원안대로 채택됐다. 이뿐만 아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국호(國號)도 소련이 정한 것을 직역한 것이다.('아시아 냉전사', 시모토마이 노부오·下斗米伸夫)

북한은 자주적이기는커녕 철저히 소련에 예속적이었던 것이다. 예속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북한 초대 내각의 상(相·장관)과 부상(副相·차관)은 소련 군정 사령부가 명단을 만들어 검토한 후 스탈린의 재가를 받아 김일성이 임명했다. 남한으로 치면 미 군정사령관 존 하지가 초대 내각 명단을 만들어 트루먼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이승만 대통령이 임명한 것이 된다.

남한은 친일파가 지배했다는 것도 허구다. 이승만 대통령과 신익희 제헌국회 의장, 김병로 대법원장 등 3부 요인은 물론 초대 내각의 다수가 임정 요인이거나 독립운동가 출신이다. 그뿐만 아니라 5·10 제헌의원 선거를 위한 선거법을 제정하면서 친일 부역자는 피선거권은 물론 선거권도 박탈했다. '일본 정부로부터 작위를 받은 자'와 '일본 제국의회 의원 출신'은 선거권이, 일제강점기 때 '판임관 이상 경찰관, 헌병보, 고등경찰 및 밀정 행위자' '중추원 부의장, 고문, 참의' '부(府), 도(道)의 자문, 결의기관 의원' '고등관 3급 이상, 훈 7등 이상(기술관, 교육자 제외)'은 피선거권이 없다고 규정한 것이다. 이에 따라 초대 내각과 제헌국회 간부에 '친일파'는 들어갈 수 없었다.

반면 북한 초기 내각은 친일파투성이였다. 부주석에 임명된 김일성의 동생 김영주부터 일본 헌병 보조원 출신이다. 부수상 홍명희도 일제 말 이광수 등과 함께 전쟁 비용 마련을 위한 임전대책협의회에서 적극 활동했다. 군부의 친일파 기용은 특히 두드러진다. 초대 공군사령관 이활, 인민군 9사단장 허민국, 인민군 기술 부사단장 강치우 등이 모두 일제강점기 나고야(名古屋) 항공학교 출신이다.

이들 모두 이미 알려진 사실, 그중에서도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그 사실들을 따라갈수록 이재명류의 '신념'은 무지(無知)의 과시임이 드러난다. 지적 게으름의 필연적 결과다. 이런 인사가 대통령을 하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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