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도 말고 덜도 말고'를 바랄 때 보름달이 소환된다. 치우친 모습 없는 추석 보름달이 특히 그렇다. 삶이라고 다르랴. 치우치는 삶, 자칫 판단이 흐릴 수 있고 갈 길을 잃을 수 있다. 옛 사람이 중도(中道)니, 중용(中庸)이니 하는 쉽지만 어려운 말로 경계한 까닭이리라.
그러나 세상은 이를 허용하지 않기 마련이다. 특히나 지금의 한국 사회는 조선 세종 때 명재상이란 소리를 들었다는 황희 정승처럼 '이도 옳고, 저도 맞고, 너 또한 맞노라'며 맞장구치고 살기 어려운 세상이다. 전라도 보성 땅, 영광 정씨(丁氏) 가문의 참담한 내력을 담은 '거북정' 고택 8폭 병풍에는 이런 삶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새겨져 있다.
임란 때 공을 세워 집안 가문을 일으키고 대대로 풍족한 살림을 이끌며 3천 석이란 큰 재산을 일궈 일제강점기 때는 독립운동에 보탬이 됐다. 이웃에 베풀고, 평등 세상 위해 노비를 내보냈다. 광복된 나라에서는 독립운동가 여운형 등과도 가깝게 지냈다. 그러다 사상과 이념의 색깔 회오리 속에 덮친 뭇 탄압으로 집안 사람 여럿이 죽거나 고초를 겪었다.
자연의 흐름처럼 어느덧 사상과 이념의 광풍(狂風)도 지났다. 다시 그런 세월이 오지 않기를 바라서인지 이런 가슴 아픈 집안 옛 이야기를 드러내 우여곡절의 사연을 병풍에 담았다고 한다. 많은 답사 발길이 이어지는 전남 보성 땅 정씨 고택 거북정의 병풍 사연은 우리 근현대사에 얽힌 뒤틀린 역사를 되돌아보며 내남 없는 공존의 가치를 일깨운다.
내년 3월 9일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야 대선 주자가 전국을 돌며 각 지역의 자긍심을 북돋우고 듣기 좋은 이야기를 풀어놓기 바쁘다. 지난 20일 대구를 찾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대구가 민주화에 나선 진보 도시라고 치켜세웠다. 그와 달리 대구를 '수구 꼴통 도시'로 낮추는 정치인도 여전하니 윤 전 총장의 찬사가 솔깃하지만 편치는 않다.
어느 쪽이 치켜세우면 다른 논리로 폄훼하는 정치인이 나타나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그러니 역사 속에 그려진 대로 필요한 역할을 묵묵히 하며 치우치지 않으려는 본래의 대구경북으로 남기 바란다면 과욕일까. 보성 땅 거북정 병풍의 사연처럼 사상과 이념의 광풍이 한 집안의 평화를 깨뜨린 역사를 반면교사로 대구경북은 있는 그대로 두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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