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생전에 편지 한 번 써본 적 없는 제가 이렇게 펜을 잡고 보니 기분이 이상합디다.
아부지, 다시 한번 편지로 불러보는 아부지. 옛날엔 늘상 아부지요! 아부지요! 이렇게 불렀는데 막상 육필로 아부지를 불러보니 생소합니다.
아부지에 대해 내 마음속에 각인된 기억은 그 어느 날 아침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아침밥을 먹던 중 시래깃국에 밥을 말아 먹다가 남긴 내게 "다 먹어라"는 아버지 훈육에 "안 먹어요"라며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나를 번쩍 안아올려 마당에 내팽개치셨던 기억이 납니다.
처음 느낀 두려움, 공포에 울음도 나오지 않았지요. 저를 던져놓고 마당으로 내려온 아부지가 저는 저를 일으켜 세워주실 줄 알았지만 부지깽이를 집어 들고 저를 때리셨습니다. 아부지의 매질에 저는 몸을 한껏 웅크려 피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때 어머니와 누나, 동생들이 지켜보고 있는 것을 아부지는 아무 말씀 없이 쓱 둘러보셨지요. 다소 과격하긴 했지만 어쨌건 밥 투정을 하는 아들에게 밥상머리 교육을 호되게 하신 것이지요. 어쩌면 저를 본보기로 자식들에게 모두 '밥 투정 말아라'라는 훈육을 하신 것이겠지요.
어쨌든 그 뒤로는 아부지가 말씀하시는 것은 철저히 지키려고 했습니다. 가령 가을에 콩 타작을 하고 나면 주위로 콩이 많이 튀어 나가는 데 콩 타작을 하는 날이면 아부지는 꼭 새벽에 저를 깨워서 그 튀어 나간 콩을 다 주우라고 하셨습니다. 보통 10월 말, 11월 초에 하는 콩 타작인 만큼 그 초겨울 시골의 새벽 날씨는 또 얼마나 추울 것이며 손은 또 얼마나 시리던지...
그런데 누나나 동생들은 한 10개만 주워도 '많이 주웠다.' 하시며 칭찬하던 아부지가 유독 저는 한 움큼을 주워 모아도 한 번 더 둘러보자고 하시며 그만 주워도 된다는 말씀이 없으셨지요. 참 그때는 차별받는 것 같아 서럽기도 했습니다.
제가 국민학교(초등학교) 4학년 때도 또 한 번 일이 있었습니다. 초여름이었던 때 어느 날 잠에서 깼는데 햇살이 창을 향해 쏟아지면서 평소 잘 보지 못했던 옹이 자국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때는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옹이 자국을 불로 그슬리면 깨끗이 지워지겠다 싶어 성냥불을 댔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불이 옮겨붙었고 이 상황에 방으로 들어오신 아부지가 놀래며 저를 많이 혼내셨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 저도 어느덧 고등학교도 졸업하고 집에서 농사일을 돕던 어느날, 하루는 일을 마치고 친구 집에서 술을 마시고 자고 아침에 집에 들어오자 아부지는 그런 제게 무심하게 딱 한 마디 하셨습니다. "잠은 집에 와서 자라". 이 한 말씀이 술이 덜 깬 저를 정신 확 차리게 해줬습니다. 이후에도 그 한 말씀은 제가 꼭 지켜야 하는 말로 평생을 살아오며 제 자식들에게도 가르치고 있습니다.
제 신조 아닌 신조가 된 것이지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공식적인 일 외에는 외박은 전혀 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다소 심하게 혼을 내시긴 했지만 그게 아부지만의 자식에 대한 걱정, 가르침, 그리고 아들인 저를 믿는대서 오는 방식이었겠지요. 지금 이렇게라도 아부지와 연결 고리를 가지려고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저도 환갑이 넘었습니다. 아부지께 혼난 기억밖에 없지만 왜 나이가 들수록 자꾸 아부지에 대한 기억의 연결고리를 하나라도 더 찾고 싶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부지요 평소에 하시던 말씀이 그때는 몰랐어요. 지금은 아부지의 한 말씀, 한 말씀들을 내 인생의 좌표로 삼고 있습니다. "하루에 한 번씩 하늘을 봐라". "머리에 하늘을 두르고 살면서 부끄러운 짓 하지 말아라." "예 아부지 그 말씀들 제가 매일매일 새기며 살고 있습니다." 아부지의 그 무심하게 툭 던지는 그 한마디가 그립네요.
5남매 중 셋째 아들 김성용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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