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0분째, 스마트폰 화면의 '업데이트' 버튼을 쉴 새 없이 누르고 있다. 뻐근해진 왼손 검지는 업데이트 버튼에, 오른손 검지는 화면 하단에 고정한 채다. 앱 화면 상단에는 접종기관 예약 안내가 표시돼 있다.
'당일 예약' 버튼이 나타나기만 하면 누를 준비가 돼 있다. 갑자기 반짝 나타난 노란색 예약 버튼. 떨리는 손으로 잽싸게 눌렀지만 돌아온 건 '선착순 예약이 마감되었습니다'. 접종 시간은 이미 마감 30분 전이다. 아쉬운 마음으로 화면을 닫고 내일을 기약한다.
잔여 백신을 찾는 '인간 매크로'(자동 반복 실행 프로그램)를 자처한 건 순전히 조급증 때문이었다. 코로나19 백신 접종 순서까지 남은 건 두 달여. 마스크를 잘 쓰고 방역 수칙 지키며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 견딜 순 있겠지만 1년 6개월은 인내심이 바닥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일상 속 불안감도 신물이 났다. 풀리나 했더니 4차 대유행이 몰아치고, 스쳐도 전염될 수 있다는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득세한다. 금방이라도 맞을 수 있을 것 같던 백신은 제때 접종이 가능하긴 한 건지 의심스러웠다.
결국 남은 수단은 잔여 백신이다. 그러나 당일 신속 예약으로 접종을 받는 이는 대한민국에서 하루 1천300명(21일 기준)에 불과하다.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 쉴 틈 없이 예약 페이지를 '새로 고침'하고 예약 버튼을 누르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회사 인근에 있는 의료기관 5곳에 예약 알림 신청을 걸었다. 그러나 알림을 확인해 SNS 창을 열고 들어가면 이미 게임 종료. 불꽃 튀는 경쟁 속에서 백신을 획득하려면 전략과 전술이 필요하다. 온라인 좌석 예약 따윈 해본 적 없는 디지털 '곰손'이라면 더욱더 그렇다.
인터넷상에 떠도는 '예약 팁'을 찬찬히 둘러봤다. 이들이 내놓은 성공 전략의 공통점은 시간 분석과 단순 무식 반복 작업의 조화다. 우선 알림 신청을 해둔 병·의원을 중심으로 잔여 백신 발생 알림이 뜨는 시간을 정리했다. 의료기관마다 알림 시간대가 일정한 편인데, 마감 전 40~60분 정도가 많았다. 집중 공략 타임이 정해진 셈이다.
알림 시간대 전에 접종 기관 예약 안내 페이지로 들어가 '새로 고침'을 1초 간격으로 계속 터치했다. 한 손가락은 쉼 없이 새로 고침을 반복하고 다른 손가락은 화면 하단에 '당일 예약' 버튼이 뜨길 기다렸다. 일단 뜨면 1~2초 내에 당일 예약과 이후 안내창의 확인을 눌러야 한다.
10분 정도 지나자 손가락이 저려 오기 시작했다. 화면에 고정된 눈은 빠질 듯 아프고, 괜스레 얼굴 이곳저곳이 가렵다. 새로 고침을 한 번 누를 때마다 오만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파고든다. 대부분 극한의 회의감이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오늘 잔여 백신이 나오기는 하는 걸까' '그냥 기다리면 될걸, 왜 이러고 있나' 등등.
갑자기 노란색 버튼이 눈에 들어왔다. 잽싸게 당일 예약을 누르고 확인 버튼을 찾는 사이 백신은 이미 또 다른 인간 매크로의 차지가 됐다. 성공했더라면 이날 하루 잔여 백신 예약에 성공한 1천300여 명 안에 들 뻔했다. 손에 쥐었던 모래가 사르르 빠져나가는 느낌. 이런 기분을 나흘 동안 경험했고, 내일도 인간 매크로는 돌아갈 것이다.
IT 강국 대한민국에서 백신 예약 시스템은 번번이 멈춰 섰다. 너무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몰린 게 이유라지만, 정부의 들쑥날쑥한 백신 수급과 방역 상황에 대한 시민들의 불안감이 가장 큰 원인이다. 불신 가득한 '코시국'에서 생존하려는 인간 매크로들의 애처로운 손짓은 오늘도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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