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립습니다] 김구섭 씨 부친 故 김영해 씨

1982년 5월 경북 경주로 나들이를 떠난 김영해 씨와 부인 김돌남 씨가 찍은 기념사진. 가족제공.
1982년 5월 경북 경주로 나들이를 떠난 김영해 씨와 부인 김돌남 씨가 찍은 기념사진. 가족제공.

선친(先親)도 6.25 참전용사인데 현충원에 모실 수 있을까.

병무청에 문의 결과 총상으로 후송하여 일병으로 제대한 6.25 참전용사로 확인되었다. 대구지방 보훈처에 서류를 제출하니 신원조회와 전과기록 등 심의 절차를 거쳐 한 달 후 보훈처에서 국립 영천호국원에 모실 수 있는 증명서를 발급받았다.

남동생과 함께 어머니를 만나 아버지의 묘 이장 문제를 꺼냈다. 이때까지 집안에 우환도 없이 잘 지냈다. 아버지 묘 터는 대문중산 터 중에서 명당 중의 명당이다. 그것도 할머니가 잡은 묘 터에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서 쓰신 곳인데 왜 화장을 하여 납골당으로 모셔야 하느냐. 선산에 아버지를 모신 지도 벌써 30년이 다 되어 가는데, 고향의 웃어른들도 반대할 것이 분명하다."며 크게 역정을 내셨다.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한 아이가 "너거 아부지 뭐 하노?"하고 물었다. 아버지가 마부라고 말할 수 없었다. 말똥 냄새가 난다고 쑤군거릴 것 같아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 채 얼굴만 붉혔다. 어스름 달빛이 왜 그리도 서럽게 보이던지 발부리에 걸린 돌부리를 걷어찼다. 내 발가락만 아팠다.

말은 우리의 희망이요 일꾼이며 재산목록 1호였다. 봄에는 이삿짐이나 금호강변의 모래, 자갈을 채취하여 그 품삯으로 양식을 구했다. 여름과 가을에는 사과를 공판장으로 실어 나르고, 찬바람이 일면 저탄장에서 연탄을 받아 각 가정에 배달하였다. 봄 햇살이 두터워질 때까지 검은 땔감은 집게와 손을 떠나지 않았다. 그런 날은 아버지의 몸에 밴 땀과 말똥에 검은 탄가루까지 겹쳐 온 집 안을 검게 뒤덮었다.

젊은 시절 김영해 씨 모습. 가족제공.
젊은 시절 김영해 씨 모습. 가족제공.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에 섬유회사에서 경비원으로 근무하셨다. 자전거로 한 시간 거리였다. 어느 날 퇴근 무렵, 철로 건널목을 건너시다 마을버스에 받혔다. 도로 가장자리에 넘어졌다가 겨우 일어나 다리를 절면서 자전거를 끌면서 귀가하셨다. 그 후 뒷골이 당기며 가끔 머리가 아프다고 하신 아버지를 어머니는 나이 탓으로 돌리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몇 달 뒤 어느 날 약주를 한 잔 하고 집 계단을 오르다 넘어져 아버지가 머리를 심하게 다쳤다. 열두 시간 반의 긴 수술이었다. 뇌출혈이 심해 가망이 없다는 의사의 선고가 내렸다.

친구 신부에게 임종 대세를 부탁했다. 프란치스코 아시시를 부르면서 의식절차를 행한 후 "아버지가 좋은데, 갔으니 염려하지 말라" 며 내 손을 꼭 잡았다.

아버지를 국립 영천호국원에 모신다고 하니 고향의 어른들은 조상을 등진 놈이라고 야단이었다. "그 자리가 어떤 자린데, 이때까지 집안에 아무 탈 없었으니 그대로 둘 것이지. 묘를 다른 데로 이장한 놈치고 잘되는 것 못 봤다."라며 혀를 끌끌 찼다. 몇 분은 "벌초하기도 힘들고 하니 국가가 관리해주면 편할 수도 있겠다. 네 뜻대로 하되, 문중 벌초와 아버지 고향이니 자주 오너라."라고 일렀다.

경기도 연천 28사단 수색대 신병으로 비무장지대 안 GP에 근무할 때다. 아버지는 등짐에 떡 한 말을 짊어지고 첫새벽에 집을 나서 저녁 무렵 부대에 도착했다. 그 먼 길을 오신 아버지를 보자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이 앞을 가렸다. 초등학교 시절 그렇게도 부끄럽던 아버지가 무척 자랑스러웠다. 보름달이 활짝 웃고 있었다.

"무슨 일이든지 스스로 알아서 하라"던 아버지의 말씀은 유언처럼 내 마음에 새겨졌다. 아버지, 전우들과 함께 편히 쉬십시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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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메일: tong@imaeil.com

▷사연 신청 주소: http://a.imaeil.com/ev3/Thememory/longletter.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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