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친(先親)도 6.25 참전용사인데 현충원에 모실 수 있을까.
병무청에 문의 결과 총상으로 후송하여 일병으로 제대한 6.25 참전용사로 확인되었다. 대구지방 보훈처에 서류를 제출하니 신원조회와 전과기록 등 심의 절차를 거쳐 한 달 후 보훈처에서 국립 영천호국원에 모실 수 있는 증명서를 발급받았다.
남동생과 함께 어머니를 만나 아버지의 묘 이장 문제를 꺼냈다. 이때까지 집안에 우환도 없이 잘 지냈다. 아버지 묘 터는 대문중산 터 중에서 명당 중의 명당이다. 그것도 할머니가 잡은 묘 터에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서 쓰신 곳인데 왜 화장을 하여 납골당으로 모셔야 하느냐. 선산에 아버지를 모신 지도 벌써 30년이 다 되어 가는데, 고향의 웃어른들도 반대할 것이 분명하다."며 크게 역정을 내셨다.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한 아이가 "너거 아부지 뭐 하노?"하고 물었다. 아버지가 마부라고 말할 수 없었다. 말똥 냄새가 난다고 쑤군거릴 것 같아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 채 얼굴만 붉혔다. 어스름 달빛이 왜 그리도 서럽게 보이던지 발부리에 걸린 돌부리를 걷어찼다. 내 발가락만 아팠다.
말은 우리의 희망이요 일꾼이며 재산목록 1호였다. 봄에는 이삿짐이나 금호강변의 모래, 자갈을 채취하여 그 품삯으로 양식을 구했다. 여름과 가을에는 사과를 공판장으로 실어 나르고, 찬바람이 일면 저탄장에서 연탄을 받아 각 가정에 배달하였다. 봄 햇살이 두터워질 때까지 검은 땔감은 집게와 손을 떠나지 않았다. 그런 날은 아버지의 몸에 밴 땀과 말똥에 검은 탄가루까지 겹쳐 온 집 안을 검게 뒤덮었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에 섬유회사에서 경비원으로 근무하셨다. 자전거로 한 시간 거리였다. 어느 날 퇴근 무렵, 철로 건널목을 건너시다 마을버스에 받혔다. 도로 가장자리에 넘어졌다가 겨우 일어나 다리를 절면서 자전거를 끌면서 귀가하셨다. 그 후 뒷골이 당기며 가끔 머리가 아프다고 하신 아버지를 어머니는 나이 탓으로 돌리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몇 달 뒤 어느 날 약주를 한 잔 하고 집 계단을 오르다 넘어져 아버지가 머리를 심하게 다쳤다. 열두 시간 반의 긴 수술이었다. 뇌출혈이 심해 가망이 없다는 의사의 선고가 내렸다.
친구 신부에게 임종 대세를 부탁했다. 프란치스코 아시시를 부르면서 의식절차를 행한 후 "아버지가 좋은데, 갔으니 염려하지 말라" 며 내 손을 꼭 잡았다.
아버지를 국립 영천호국원에 모신다고 하니 고향의 어른들은 조상을 등진 놈이라고 야단이었다. "그 자리가 어떤 자린데, 이때까지 집안에 아무 탈 없었으니 그대로 둘 것이지. 묘를 다른 데로 이장한 놈치고 잘되는 것 못 봤다."라며 혀를 끌끌 찼다. 몇 분은 "벌초하기도 힘들고 하니 국가가 관리해주면 편할 수도 있겠다. 네 뜻대로 하되, 문중 벌초와 아버지 고향이니 자주 오너라."라고 일렀다.
경기도 연천 28사단 수색대 신병으로 비무장지대 안 GP에 근무할 때다. 아버지는 등짐에 떡 한 말을 짊어지고 첫새벽에 집을 나서 저녁 무렵 부대에 도착했다. 그 먼 길을 오신 아버지를 보자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이 앞을 가렸다. 초등학교 시절 그렇게도 부끄럽던 아버지가 무척 자랑스러웠다. 보름달이 활짝 웃고 있었다.
"무슨 일이든지 스스로 알아서 하라"던 아버지의 말씀은 유언처럼 내 마음에 새겨졌다. 아버지, 전우들과 함께 편히 쉬십시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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