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의 고장 대구에서 전 세계인의 심신의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24일 대구 북구 구암서원 인근 활터에서 만난 김병연(56) 궁장은 "마음에 담긴 한을 화살에 담아 날려버릴 수 있는 정신을 널리 알리고 싶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친구들과 활을 쏘며 자랐다. 그가 10대 초반에 사용하던 활은 평소 검도, 유도, 활, 권투 등 무예를 갈고 닦은 아버지가 직접 만들어 주셨다. 해방 후 대구에 정착하신 그의 아버지는 신생공업사에서 뛰어난 선반 기술 등으로 공장장을 역임하는 등 대구 근대 자동차산업을 이끌었던 분이다.
그는 아버지에게 배운 방식으로 활을 제작해 30~50원을 받고 용돈 벌이를 하기도 했다. 당시 그의 나이 11살 정도였다. 그는 군대 전역 후 직장생활을 하고 결혼, 출산 평범하지만, 행복한 삶을 살았다. 그러던 중 드라마 주몽을 본 아들이 활을 만들어달라고 조르기 시작했고, 활에 대한 그의 열정은 다시 불타올랐다.
그는 각종 시행착오를 겪던 중 명궁 주해응 선생을 만났다. 그는 스승님을 통해 우연히 대구에서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죽궁을 보게 됐다. 죽궁은 각궁과 달리 소힘줄과 동물의 뿔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의 손재주를 간파한 스승님의 권유로 그는 대구 죽궁 복원에 나섰다.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사업을 하고 있던 그는 활 만들기에 전념했다. 그는 당시 활이 자신의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승님의 말 한마디에 단숨에 시작한 김 궁장의 죽궁 복원기는 쉽지 않았다. 역사적 근거를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수년의 노력 끝에 그는 조선왕조실록 효종실록 14권(효종 6년 1655년 신유 2월 6일)에서 기록을 찾았다. 대구 부사 이정이 제작한 죽궁을 임금에게 전달해 기뻐했고, 통정대부로 승진까지 시켜줬다는 내용이다. 당시 그는 심해에 빠진 보물섬을 발견하는 기분이었다. 성능이 뛰어난 대구 죽궁이 북벌론을 펼치던 효종의 마음을 흔들었을 것이 그의 해석이다.
그는 이같은 역사적 의의 가진 죽궁을 복원하기 위해 매일 노력 중이다. 특히 2014년 그는 아름다운 나전칠기를 세계 최초로 접목해 강성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매일 활을 만들고 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2018년 그의 공방 옆 가게에서 불이 번지며 모든 활과 제작 공구가 불에 타 한 줌의 재가 되기도 했다.

김 궁장은 포기하지 않고 지친 현대인의 삶을 위로하고 전 세계에 활의 정신을 전하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는 활 끝에 정신을 집중하고 한을 담아 날려버리는 선조들의 정신이 담겨있다고 강조했다. 활은 전쟁에서 조국을 지키기 위해 사용하던 무기이자, 평소에 마음을 다스리는 안식처인 만큼 의미가 깊다.
이같은 정신을 널리 보급하기 위해 그는 2010년부터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했다. 또한 매천고를 시작으로 다양한 학교에서 활의 정신과 활 교육을 해왔다. 그는 주한 대사와 가족 100명이 모인 곳에서 대금 소리에 맞춰 활을 쏘는 '아리랑 사법'과 향사례를 선보이기도 했다. 가장 한국다움을 제대로 알린 그는 대사들에게 찬사를 받았다. 대구에서 각종 행사나 다른 국가의 지역 간 협약이 있을 때 선물로 그의 활을 전하기도 한다.
그는 5천 년의 민족역사가 전 세계인을 감동하게 하고 있다며 다양한 곳에서 활을 접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또한 전 세계에서 가장 활을 잘 쏘는 나라인 대한민국의 중심인 활의 고장 대구를 세계적 전통의 도시로 알리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앞으로 뮤지컬, 국제행사, 관광, 교육 분야 등 다양한 방식으로 대구 활을 알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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