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한 마리가 며칠째 주택가를 서성인다. 쓰레기 더미를 뒤지다가도 인기척에 놀랐는지 자동차 밑으로 몸을 숨긴다. 눈치를 보다 황급히 담벼락 위로 뛰어오르는데, 아뿔싸 배가 불룩하다. 더는 지켜볼 수 없다. 구조자는 임신한 이 고양이를 구조하기로 결심한다.
며칠 후 커뮤니티에 임신한 고양이를 맡아줄 사람을 찾는다는 글이 올라온다. 아기 고양이들이 태어나 입양을 갈 때까지만 맡아 달라는 사연이다. 수고비도 없는데 누가 자원을 할까. 몇 시간 후 신청 댓글이 여러 개 달린다. 임보맘이라 불리는 이들은 구조된 동물이 입양 가기 전까지 임시보호 하는 일을 담당한다.
◆ 길고양이 입양 갈 때까지 임시보호
"키울 것도 아닌데, 제시간 제 돈 쓰며 고양이를 보살피잖아요. 저도 해보기 전에는 이해못했어요" 임신한 고양이는 대구 북구에 사는 김찬영 씨(26) 집으로 왔다. 그 고양이는 새끼 6마리를 낳았고 2019년 6월부터 8월 말까지 찬영 씨의 집에 살았다. 새끼 고양이는 모두 입양을 갔고 어미 고양이는 입양이 되지 않아 결국 구조자에 입양됐다. 찬영 씨는 벌써 17번째 임보를 하고 있는 임보맘이다.

1년에 유기되는 반려동물 수가 10만을 훌쩍 넘어섰다. 평균 한 달에 1만 마리, 하루 333여 마리가 버려지는 셈이다. 신고된 게 이정 도고 작은 사설 보호소나 쉼터의 상황은 포함되지도 않았다. 거기에다 전국적으로 추산되는 길고양이 개체 수는 100만여 마리나 된다고. 어찌 됐든 구조된 동물은 각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보호소로 가는데 보호소의 공간은 한정돼 있고, 그마저도 열흘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안락사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 때문에 동물을 구조해도 보호소로 보내지 못하고 개인이 임시보호를 하는 경우가 많다. 각종 커뮤니티에 임보자를 구한다는 게시글이 꾸준히 올라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 번은 수유가 필요한 어린 고양이를 맡았었는데,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나요" 수유 고양이는 개인은 물론 단체까지도 임보 하기를 꺼린다. 그도 그럴 것이 매일 2~3시간에 한 번씩 잠도 못 자고 수유를 해야 하고 새끼 고양이가 몸이 약할 경우는 신경써야 할 부분이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찬영 씨가 맡았던 수유 고양이는 같은 배에서 태어난 형제 중에서도 가장 약한 고양이였다. 게다가 탯줄이 잘 못 끊어졌는지 염증이 생겨 농도 차 있었다. 발견하자마자 바로 병원을 찾았지만 치료를 받아도 농은 계속 커졌고 결국 이 새끼 고양이는 고양이 별로 떠났다. 찬영 씨는 그날 임보를 하고 처음으로 펑펑 울었다.
◆ 임보 만으론 부족! 구조 활동도 병행
"그냥 내가 한 번 구조해볼까?" 임보 경력이 쌓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해본다는 생각. 보통은 구조자와 임보자가 분리돼 있다. 구조자가 고양이를 구조해 커뮤니티나 SNS에 맡아줄 사람을 구하면 임보자가 지원을 하는 체제다. "임보를 몇 번 하다 보니 길고양이들이 왜 그렇게 많이 보이는지 몰라요. 그 세계에 관심을 갖고 있으니 더 잘 보이는 거겠죠?" 찬영 씨의 첫 구조는 학교에 사는 고양이들이었다.

"학교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려 있더라고요. 알고 보니 실외기 밑에 아기 고양이들이 계속 울고 있었던 거죠" 누군가 데려가겠지 하며 처음에는 그냥 지나쳤다. 하지만 집에 가서도 새끼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저녁에 다시 가보니 아니나 다를까 한 마리는 어디로 간지 보이지도 않고, 한 마리는 너구리에게 낚아 채이던 찰나였다. 나머지 두 마리라도 살리자는 마음으로 찬영 씨는 앞뒤 안 가리고 상자를 들고 집에 왔다. 임보를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구조까지 하게 될 줄은 몰랐다는 찬영 씨. 당시엔 심지어 일이 바빠 임보를 잠시 멈췄던 시기였다. 하지만 이미 데려온 고양이를 끝까지 책임져보자는 생각으로 직장 동료들에 양해를 구하고 고양이들과 함께 출퇴근을 했다.

구조, 임보까지 성공적으로 마쳤으나 입양이 문제였다. 구조자가 알아봐 주던 입양자 찾기를 찬영 씨 스스로 하려니 막막함이 앞섰다. 한 마리는 치즈 태비(노란 털과 흰 털이 섞인 종)였고, 한 마리는 온몸이 흰 색인 종이였다. 길고양이도 생김새에 따라 입양률이 확연히 차이 난다. 털 색깔이 섞인 고양이는 비교적 흔히 볼 수 있다 생각하여 입양 문의가 적은 반면 하얀 고양이나 검은 고양이는 올리기만 하면 금세 주인을 찾아간다. 찬영 씨의 아기 고양이도 하얀 고양이에게만 입양 문의가 잇따랐다. 다행히 동반 입양을 하겠다는 보호자가 나타나 두 고양이 모두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됐지만. 이럴 때면 찬영 씨는 씁쓸한 마음이 들곤 한다.
◆ 이상한 입양자, 임보자도 많아요
입양을 갔다고 마음을 놓을 수는 없다. 밥은 잘 먹고 있는지, 낯은 가리지 않는지. 임보자는 입양자와 정기적으로 연락하며 파양, 학대, 유기 등 혹시 모를 불상사를 대비한다. 하지만 입양자들이 부담스러워할까 봐 항상 조심스럽다고. 중성화 전까지는 한 달에 한 번, 그 이후로는 1년에 한 번 정도 연락한다. "아니면 sns를 하시냐고 물어봐서 계정을 팔로우 해요. 그곳에 가끔이라도 올라오는 고양이들을 보며 '이 녀석 잘 지내고 있구나' 라는 확인 아닌 확인을 한답니다" 무책임한 임보자도 많다. 고양이가 물어서 콧잔등을 때렸다거나, 같이 물었다거나. 이런 일은 너무 많아 입에 올리기도 지친다는 찬영 씨가 크게 한숨을 내쉰다. "2개월 된 새끼 고양이를 임보 한다고 데려가서 뱀을 먹이로 준 경우도 있었고, 일부러 집 밖으로 내 보내 놓고는 가출했다고 거짓말을 하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임보에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은 이 세계에 감히 발을 들이면 안 된다. 임보는 생각보다 힘들고 큰 책임감이 뒤따르는 일이다.

큰 질병 치료에 드는 비용은 보호소의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소소한 병원비와 간식, 위생 용품 등은 직접 구매해야 하기도 한다. 상처받은 마음을 다독이는 것은 물론이고 정기적인 산책과 놀이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그뿐인가. 꾸준히 임보 일기를 작성해 고양이의 입양 기회를 열어 주어야 하고, 종내는 정해진 이별을 담담히 겪어 낼 각오도 해야 한다.
"그래도 임보자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은 있어요. 길 위의 동물이 생각보다 너무 많거든요. 한두사람 힘으론 절대 안 되요" 각지에서 단체와 개인들이 유기 동물 임보와 입양에 발 벗고 나서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안락사 위기에 처하는 동물 수를 따라잡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마냥 내버려 두면 어떻게 될까. 상상조차 끔찍하다.
몇몇 사람, 한두 단체의 노력으로 그 수를 역전시킬 순 없겠지만 많은 사람이 임보에 동참하고 입양을 지원하면 세상이 바뀌는 속도는 한결 빨라지지 않을까. 물론 그에 앞서 동물을 유기하는 사람이 없어지는 것이 우선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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