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서스펜디드 얼음물 운동 시작해 보자

지난 25일 서울시 중림동 한 쪽방촌에서 거주자가 선풍기를 켜고 TV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5일 서울시 중림동 한 쪽방촌에서 거주자가 선풍기를 켜고 TV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한윤조 사회부 차장
한윤조 사회부 차장

전국적으로 폭염이 맹위를 떨치고 있다. 높은 습도에다 이글거리는 태양까지 더해지면서 낮이고 밤이고 가릴 것 없이 숨 막히는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대구는 '폭염'으로 악명 높다. 아예 '대프리카'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다. 통계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하루 최고 기온이 33℃가 넘는 평균 폭염일수는 대구가 32일로 전국 평균 14.9일에 비해 두 배를 넘는다.

역대 가장 더웠던 지난 2018년 여름 이후 정부는 폭염을 자연 재난으로 규정했다. 이후 3차 국가 기후변화 적응 대책을 통해 폭염에 대한 국가적 대응 정책을 내놨다.

하지만 역대급 무더위에다 코로나19 4차 대확산까지 겹친 현재 국민들이, 더구나 노숙인이나 쪽방 거주민 등 취약계층이 체감하는 변화는 거의 없다. 재난은 가난한 이들에게 더 큰 타격을 가하지만 3년 동안 바뀐 거라곤 없는 셈이다.

지역 800여 명의 쪽방 거주민을 지원하고 있는 (사)대구자원봉사능력개발원에 따르면 올여름 취약계층을 위해 지원되는 것은 하루 1개의 얼음물과 5차례 삼계탕이 전부다. 무더위 쉼터는 코로나19로 인해 사용 인원 제한으로 예년보다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제공되는 얼음물마저도 '얼음'은 아니다. 일주일에 2회씩 대구 전역에 흩어져 있는 쪽방촌을 돌며 얼려진 생수를 배송하는데, 변변한 냉장고조차 없이 스티로폼 아이스박스 안에 보관하다 보니 금세 녹아내리는 탓이다. 비좁은 방에 냉장고조차 없이 살아가는 쪽방촌 주민들에게 그나마 시원한 냉기를 전달하기 위해 고안한 얼음물 전달이 사실상 그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장민철 쪽방상담소 소장은 "쪽방촌 거점마다 냉장고나 제빙기를 설치하는 방안도 고민해 봤지만 관리 부담에 건물 주인들이 꺼려 하고, 인력이나 시간적 한계가 있다 보니 얼음물 전달이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사실 이 문제는 편의점 대기업들이 나서주면 쉽게 풀릴 수 있을 것 같다. 도심 골목골목까지 뻗쳐 있는 그들의 유통망을 활용하는 것이다. 쪽방촌 주민들이 인근 편의점에서 필요할 때마다 얼음물을 가져갈 수 있도록 제도를 고안한다면 굳이 시간과 인력을 써가며 얼음물을 배송할 필요조차 없어진다.

시민들이 동참하는 '서스펜디드 얼음물' 운동을 펼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불우 이웃을 위해 미리 커피 마실 돈을 기부해 놓는 서스펜디드 커피처럼, 시원한 얼음물조차 마음껏 마시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일반 시민들이 미리 기부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생수 가격이 대체로 1천 원 미만이다 보니 기부하기에 부담이 크지 않아 좋다. 현재 편의점 업계가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키핑' 제도에 어려운 이웃을 위한 기부 계정을 개설하는 방식이라면 어렵지 않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점점 더 강도가 극심해지고 있는 폭염이라는 재난 앞에 가장 절실한 것은 냉방이 되는 거주 공간이다. 한여름 한시적으로라도 이들이 맨몸으로 무더위를 견디지 않을 수 있도록 빈집이나 모텔 등을 활용한 정부의 적극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더는 폭염으로 목숨을 잃는 이들이 없어야 한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숙제부터 하나하나 해결해 가자면 취약계층 주민들이 당장 얼음물이라도 시원하게 마음 편히 마실 수 있는 환경부터 조성해 보면 어떨까.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만들려는 정부의 의지, 그리고 기업과 시민들의 협조가 있다면 찌는 듯한 무더위도 조금은 견디기 수월해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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