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종주국' 한국이 '2020 도쿄 올림픽'에서 '노 골드'로 몰락한 데 대한 세계의 평가가 이채롭고 재미있다.
뉴욕타임스는 순발력을 보였다. 태권도 경기가 열린 지난달 24, 25일 이틀 동안 한국이 동메달 1개에 그치자, 태권도가 올림픽 '메달 소외국'들의 희망으로 자리매김했다고 25일 일찌감치 보도했다. 이전까지 올림픽에서 메달을 얻지 못했던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등의 스포츠 약체 국가들이 태권도에서 약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태권도가 전 세계로 보급돼 수백만 명이 수련하는 스포츠로 자리 잡으며 세계 곳곳에서 종주국의 아성을 뛰어넘는 선수들을 배출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국내 언론은 한국의 부진한 성적을 놓고 태권도 종주국의 위기를 지적하면서 역설적으로 태권도 올림픽 퇴출론을 잠재우고 있다고 진단했다.
도쿄 대회에서 태권도의 세계화는 명확하게 드러났다. 지난달 24~27일 4일간 진행된 도쿄 올림픽 태권도 경기에는 '올림픽 난민팀'(EOR)과 61개국이 참가했다. 메달 수는 금·은메달 각 8개, 동메달 16개 등 총 32개로, 메달을 수확한 나라는 총 21개국이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대회 때는 20개국이 메달을 챙겼다. 금메달은 러시아(2개),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이탈리아, 태국, 미국, 우즈베키스탄 등 7개국이 나눠 가졌다.
우리나라는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로 메달 순위 9위에 자리했다. 한국은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태권도에서 금메달을 따지 못했다. 앞서 한국은 시드니 대회에서 금 3개·은 1개, 2004년 아테네 대회에서 금 2개·동 2개를 딴 데 이어 2008년 베이징 대회에서는 출전 선수 4명이 모두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2년 런던 대회에서는 금 1개·동 1개, 리우 대회에서는 금 2개·동 3개를 차지했다.
세계 태권도의 전력 평준화는 2012년 런던 대회부터 본격화됐다. 런던 대회 때 8개국이 금메달 8개를 나눠 가졌다. 리우에서도 한국과 중국이 금메달 두 개씩을 획득했을 뿐 8개의 금메달을 여섯 나라가 가져갔다. 도쿄에서는 우리나라와 중국이 '노 골드'에 그쳤으며 우즈베키스탄(금), 북마케도니아(은), 이스라엘(동)이 처음으로 올림픽 태권도 메달을 만져봤다.
올림픽 첫 메달을 태권도에서 장식한 나라도 여럿이다. 요르단은 리우 대회 태권도에서 첫 금메달을 손에 넣었다. 코트디부아르와 대만, 태국에 첫 금메달을 안긴 것도 태권도 선수들이었다. 로흘라 니크파이는 한 번도 올림픽 시상대에 오른 적 없던 아프가니스탄 출신으로, 베이징 대회와 2012년 런던 대회에서 연달아 태권도 동메달을 거머쥐었다. 나이지리아, 베트남, 가봉 역시 올림픽 첫 은메달을 태권도에서 따냈다.
우리나라는 시드니부터 리우 대회까지 태권도에 걸린 총 40개의 금메달 중 22개(55%)를 획득했으나 도쿄 대회에서는 '노 골드'의 참패를 맛봤다. 이는 태권도 경기 특성상 어느 정도 예고된 상태였다.
태권도는 복싱과 같은 격투기로 돈이 많이 들지 않는 '헝그리 스포츠'에 포함된다. 이 덕분에 태권도는 빠르게 세계화됐다. 뉴욕타임스는 태권도가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지역에 성공적으로 뿌리내릴 수 있었던 건 값비싼 장비나 경기장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사카 이데 니제르 올림픽위원회(NOC) 회장은 "나이지리아처럼 가난한 나라에는 태권도가 최적이다. 특별한 장비 없이도 연습할 수 있기 때문이다"고 뉴욕타임스에 밝혔다.
심판 판정의 공정성도 태권도의 세계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태권도는 정식 종목이 된 후 꾸준히 퇴출론에 시달려왔다. 재미가 없고 사람에 의한 인위적인 심판 판정이 문제였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점수제를 채택하고 전자 호구 시스템을 도입해 논란을 잠재우고 있다. 이런 노력 덕분에 태권도는 퇴출당할 위기에서 벗어났지만, 한편으로 종주국인 우리나라의 어드밴티지를 없애버렸다. 기술을 중시하는 심판의 영향력이 줄어들면서 태권도는 신체적인 조건과 체력이 좌우하는 전형적인 격투기로 자리 잡고 있다.
한국 태권도의 올림픽 참패 원인은 근본적으로 국내 태권도 환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 어릴 때부터 많은 유소년이 태권도를 배우는 등 저변이 매우 넓지만, 경기적인 측면의 겨루기는 형식적이다. 도장은 품새와 예절을 가르치는 데 집중해 학원 형식으로 운영하며 태권도 본연의 무술은 가르치지 않는다. 승품단 심사 때도 품새에 집중하며 겨루기는 흉내만 내고 있다. 대학과 국기원에서도 품새를 응용한 시범단 운영에 중점을 두고 있다.
태권도가 올림픽 등 국제대회에서 과거의 영광을 이어가려면 국기원과 국가 차원의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 같은 학교 운동부 선수 육성 시스템으로는 한때 우리나라가 강국이었다가 약체가 된 복싱의 길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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