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종교칼럼] ‘일상’의 ‘문턱’을 넘어

유재경 영남신학대학교 기독교 영성학 교수

유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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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저마다 휴가를 떠나고, 학생들은 수업이 없는 계절이다. 더군다나 올해 여름은 코로나19로 학교는 조용하다 못해 고요하다. 이때가 연구실에 칩거하며, 쌓아뒀던 책을 읽고, 미처 끝내지 못한 과제에 몰두하기 좋은 시간이다.

몇 주 전이었다. 이른 아침 연구실 비번을 누르고 문을 열려는 순간, 옆 연구실에서 대화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반가움과 의아함이 교차했다. 그곳은 분명 빈 연구실이었다. 그곳을 사용하던 C교수가 지난 3월 캐나다 토론토로 안식년을 떠났기 때문이다. 돌아올 시간이 7개월이나 남았는데, 벌써 돌아왔단 말인가?

반가운 마음이 앞서 연구실에 가방을 던져놓고, 달려가 노크했다. 그런데 그 연구실에는 C교수가 아니라 K목사가 있었다. 조금 의아했지만 평소에 알고 지내던 분이라 반가웠다. K목사는 박사 논문을 마무리하기 위해 양해를 구한 후, C교수의 연구실과 도서를 이용하게 되었다고 했다. K목사는 대구 서구에서 꽤 규모 있는 교회를 담임하고, 매주 기독교 방송국에서 프로그램을 맡아 진행하고 있는 분이다. 그분은 소신이 분명하고, 생각이 유연했다. 우연한 만남에서 미처 몰랐던 목회자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분은 50대 초반의 젊은 목사이지만 한국교회에 대해 고민이 깊었다. 그분은 코로나 시대나 코로나 이후 시대에 직면할 교회의 위기 문제가 아니라 '교회의 본질' 그 자체에 대해 골몰하고 있었다. 그분은 교세 증감의 문제보다는 미래 사회에서 교회가 어떻게 세상에 '봉사'해야 할지에 대해 숙고하고 있었다. 많은 목회자들이 지금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힘들어하고 있다. 그런데 그분은 당장의 문제, 현실의 문제가 아니라 본질의 문제에 천착하고 있었다. 그동안 사역했던 미국교회와 한국교회에서의 다양한 목회 경험이 이러한 성찰로 이어진 것일까?

C교수의 안식년과 K목사의 논문연구로 인해 필자는 당분간 그분과 이웃으로 살아야 했다. 우리는 간간이 내 연구실 좁은 탁자에서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우며 서로를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는 신학과 철학, 공간과 건축, 자연과 영성, 그리고 시대정신 등을 찾는데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놓고 대화를 이어갔다. 나는 커피 한 잔을 정성껏 내려드리며, 그분과의 대화 속에서 나를 찾았다. 함께 하는 시간 동안 그분의 집중력에 놀랐다. 그분은 매일 새벽같이 출근해 밤 11시가 넘어서까지 논문에 몰입했다. 그분은 자신의 마음과 머리를 텅 비운 채, 단 하나만 의식하고 있는 듯했다. 고요 속에서 순수하게 그것만을 의식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잠시 일을 멈춘 휴가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과거라는 '문턱을 넘는 의식'을 경험한다. 그런데 K목사에게 이 시간은 목회라는 일을 떠난 휴식의 시간이자, 자신의 문턱을 넘는 계기였다. 그렇다. 우리 모두에게도 자신이라는 '문턱' 또는 일상이라는 '경계'를 넘는 시간이 필요하다.

휴가철이다.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현대인은 휴식이 필요하다. 우리는 몸과 마음이 지쳐있지만 쉬지 못하고 끊임없이 뭔가를 해야 한다. 하루는 꽉 찬 일정의 연속이다. 잠시도 손에서 휴대전화를 놓지 못한다. 잠자리에 들 때까지 쉼 없이 달린다. 속도감, 효율성, 경쟁도 중요하지만 시간에 쫓겨서는 제대로 된 삶을 살 수도 없고, 지금이라는 '문턱'을 넘을 수도 없다. 이번 여름에는 속도를 늦추고, 고요히 자기를 돌아보며 '일상의 문턱'을 넘어 보자.

유재경 영남신학대학교 기독교 영성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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