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동식의 새론새평] 탄핵 때문에 망한 게 아니라, 망해서 탄핵당한 것

주동식 국민의힘 광주광역시 서구갑 당협위원장

주동식 국민의힘 광주광역시 서구갑 당협위원장
주동식 국민의힘 광주광역시 서구갑 당협위원장

우리나라 우파들은 자신들의 몰락이 탄핵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당하지 않았다면 문재인 정권이 등장하지도 못했을 것이고, 대한민국이 좌파 천국이 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믿는다.

사건의 인과관계를 피상적으로 판단하면 틀린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일상의 사건이 아닌, 대한민국의 운명을 가른 역사적 사건이라면 보다 심층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역사에는 평지돌출이 없다.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영웅의 결단이나 악당들의 음모 차원에서 바라보는 것은 '야담과 설화'식 세계관이다.

우파가 탄핵 때문에 몰락한 것이 아니고, 실은 우파가 몰락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다. 왜 여당의 유력 대권 주자들이 대통령에게 반기를 들고 상당수 여당 국회의원들이 거기 동조했는지 근본적인 원인을 따져 들어가면 이런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정치인은 권력을 잡기 위해 존재한다. 집권 여당 소속 정치인들이 자당 소속 대통령을 배신(?)하고 탄핵에 동참한 것은 그것이 권력을 잡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렇게 판단한 직접적인 이유는 최순실 사건의 파문이었지만 보다 더 본질적인 이유가 있었다.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여당인 새누리당이 무난하게 원내 다수 의석을 확보하리라는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진박 논쟁과 공천 파문으로 순식간에 뒤집혔다. 한 석 차이긴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이 원내 1당이 됐다. 총선 결과가 나온 지 겨우 두 달 만에 미르·K스포츠재단 보도가 나오고, 다시 한 달 만에 최순실 보도가 터져 나왔다. 이후 탄핵까지는 말 그대로 일사천리였다. 20대 총선 이후 1년도 되지 않아 대통령은 파면당했다.

그렇다면 친이-친박의 갈등이 우파 정당의 몰락을 불렀을까? 2008년 광우병 파동을 보면 다른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정동영 후보를 48.7%대 26.1%라는, 역대 최대의 득표율 차이로 누르고 당선됐다. 게다가 서슬 퍼런 임기 초반이었다. 그런 이명박 대통령이 결국 광우병 선동에 밀려 사과해야 했다. 이때부터 이명박 대통령은 사실상 레임덕 상태였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1990년 1월 전격 발표된 3당 합당도 있다. 이는 1988년 13대 총선에서 여당인 민정당이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한 데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우파 정당 단독으로는 국정 운영이 불가능하다고 판단, 당시만 해도 좌파 진영의 일원이었던 김영삼을 끌어들여야 했던 것이다.

이런 일련의 정치적 변화를 구조적 관점에서 짚어 가다 보면 한 가지 의문을 품게 된다. 우파는 일반적인 상식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정치적으로 불리한 위상에 처했던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그것이다. 연원을 거슬러 가면 끝이 없지만 적어도 1987년 체제의 성격에 대해서는 분석해야 한다. 현재의 헌정 체제가 1987년 체제 즉 6공화국이기 때문이다.

1987년 체제는 직선제 개헌을 내세운 좌파 특히 NL 주사파의 정치적 승리의 결과였다. 우파가 6·29선언이라는 정치공학적 대응으로 정권을 재창출했지만, 정치적 명분과 주도권은 좌파의 손에 넘어갔다. 좌파는 다양한 시민단체들을 설립해 진지전의 요새를 구축하고 제도권을 포위·압박해 지분을 확대했다. 참여연대, 민족문제연구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 대표적인 시민단체들이 대부분 1987년 체제 이후 등장했다.

좌파들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지만, 실상은 반대였다. 87년 체제에서 정치의 무게중심은 현저하게 좌파 쪽으로 기울어진 상태였다. 개혁적이라고 평가받는 우파 정치인 대부분이 좌파 코드를 공유한다는 사실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우파는 좌파가 던지는 정치적 어젠다를 숙제 삼아 푸는 처지로 전락했다.

우파는 건국과 산업화의 주역 즉 대한민국을 만든 세력이었다. 하지만 우파는 정치를 한 적이 없다. 반면, 좌파는 정치에 올인했다. 그 결과가 탄핵이고 대한민국의 위기다. 우파가 '탄핵의 강'을 건너 대한민국을 위기에서 구해 내려면 그라운드 제로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좌파보다 더 탁월한 정치를 해야 한다. 우파의 정치적 고민은 이 지점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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