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폭염 경보가 여름을 더 뜨겁게 하고 있다. 실내에서는 잠시라도 에어컨을 켜지 않고는 견디기 힘들다. 거기다가 마스크까지 쓰고 생활해야 한다. 사람들을 만나 정담을 나누지 못한다. 백신 접종에도 돌파 감염이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만의 국지적 현실이 아니라 전 세계적 상황이 이렇다. 이런 현실을 한마디로 말하면 뭘까? '생지옥'이라면 지나친 말이 될까? 종교에서 말하는 혹세무민 종말론이 아니라 과학을 숭배하는 서구의 저명한 인류학자 J. 다이아몬드라는 사람은 지금부터 30년 뒤인 2050년에 지구가 망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근대화, 산업화의 결과 지구에 기후 이상이 생겼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 배후에는 자연과 타자(인)를 오로지 개발과 지배의 대상으로만 여겼던 인간들의 합리적 이성이 있고, 자제할 줄 몰랐던 물질 소비와 과잉된 탐욕이 도사리고 있다. 그 결과 각종 재앙이 끝없이 발생하고 있다. 이상기후는 전 지구적으로 홍수, 태풍, 감염병, 폭염, 가뭄 등 미래의 재난을 예고하고 있고 실제로 우리는 그런 현실을 호주의 산불, 서유럽의 홍수, 미국의 가뭄 및 산불과 같은 무시무시한 현실로 똑똑히 목도하고 있다.
며칠 전 지인의 모친상을 문상하러 경북 경주시 외곽의 한 대학병원 장례식장에 간 적이 있다. 문상을 마치고 밖으로 나와 앞마당에서 오랜만에 만난 동료들과 잠시 환담을 나누었다. 그중 서울에서 오래 살다 온 한 친구가 밤하늘을 쳐다보면서 "야, 여기서는 별이 다 보이네요" 하면서 약간 들뜬 목소리를 냈다. 우리는 동시에 하늘을 쳐다봤다. 밤 아홉 시 경이었는데 정말로 밤하늘의 별이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안마당/ 무더운 한여름 밤이 빛을 틔워가면/ 타작 막 끝낸 보리 북더기 위에서/ 개머루 바랭이 쇠비름 똥덤불가시풀들이/ 서로의 몸을 비비며/ 마지막 남은 목숨 모깃불 만들기에 한창입니다// 피어오르는 연기 너머로/ 초저녁 샛별이 뜨고/ 연기 맵고 모기 극성스러울수록/ 울양대 넌출 세상 수심/ 보릿대궁 한숨소리 깊어갈수록/ 별은 더욱 깊어 푸르러갑니다// 올 여린 멍석 위/ 할머니 무릎 베고 누워 옛이야기에 취하다 보면/ 어느덧/ 아버지의 야윈 어깨 위로 걸리는 초생달이/ 밤이슬에 반짝이고/ 달맞이꽃 개울물에 목욕 갔던/ 누나들의 발짝 소리가/ 쿵쿵 좁은 골목길을 흔듭니다// 나는 할머니 이야기의 숨결을 마저 이으려/ 안간힘을 쓰다가 못내 잠이 들면// "밤이슬은 몸에 해롭다/ 방에 들어가서 자그래이"// 나는 누군가의 포근한 품에 안겨 어디론가 가고/ 내 누웠던 그 자리엔/ 덩그러니 별 하나 떨어져 누워 있지요/ 나는 푸른 별이지요….'('푸른별', 1987)
인용한 시는 내가 20대 초이던 40년 전에 쓴 것이지만 시의 배경은 1960년대 후반이다. 한국 사회가 근대화되기 전 농경문화 끄트머리의 흔한 농촌 풍경이다. 당시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도 하기 전부터 여름이 되면 동네 형과 누이들을 따라 소를 몰고 뒷산에 가서 소를 먹이고 해가 지면 내려왔다. 골목을 지나 대문에 들어서면 기다리시던 아버지가 소 이까리(고삐)를 받아 들고 우물가에 가서 "너도 오늘 하루 수고 많았다"며 소에게 구정물통에 가득한 쌀뜨물과 구정물을 먹인 후(당시는 세제로 설거지를 하지 않았다) 마당 한 귀퉁이에 임시로 만든 시원한 마답에 소를 묶어두고, 비로소 식구들은 멍석에 둘러앉아 저녁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때는 밥숟가락을 입에 넣으려고 고개를 쳐들면 밤하늘의 별들이 금방이라도 우르르 쏟아질 듯이 초롱초롱 빛났다. 비록 가난하고 소박한 저녁을 먹었지만 마당에서 별을 볼 수 있었던 그 시절이 이젠 정녕 시(詩) 속에만 남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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