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막내 나영이에요. 아버지가 떠난 지 벌써 17년이나 지났네요. 아버지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에게 하고 싶은 말을 A4용지에 한가득 담아 산소 앞에 앉아서 아버지가 듣고 있다고 생각하고 큰 소리로 읽었던 기억이 문득 스칩니다. 아버지를 보내드릴 마음의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하게 된 그 날이 이렇게 글로 적으니 바로 어제일 같이 느껴져 눈시울이 붉어지네요.
그동안 아버지를 나의 마음 안에서 잘 보내드려야 한다고 생각해서 많이 울기도 했어요. 일찍 가버린 아버지에게 남아있던 원망도 풀어 놓곤 했는데, 아직도 아버지란 단어는 제 안의 눈물샘을 건드려서 이렇게 코흘리개가 되어버리네요. 아버지 보고 계시죠? 언제나 아버지에겐 아가인 코흘리개 늦둥이 막내 나영이를... 만약 아버지를 만난다면 제일 먼저 물어보고 싶은 말이 있어요." 아버지! 이젠 아프지 않아요?"라고요.
얼마 전에 아버지가 꿈에 보였어요. 온몸이 주삿바늘 자국으로 피투성이가 되셔서는 앉아 계셨는데 그 꿈을 꾸고는 일어나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내 안에 저장된 기억의 창고엔 아버지의 모습은 아주 아팠던 모습들이라서 이런 꿈도 꾸고 이런 질문도 하는 것 같아요.
아버지 죄송해요. 이제 와서 저 혼자만 마음에 간직하고 있던 죄책감을 아버지에게 보입니다. 아버지를 많이도 미워했습니다. 술을 많이 드셨던 아버지를, 어머니와 자주 다투셨던 아버지를... 제가 어릴 때부터 아프시던 아버지께서 어머니를 고생시킨다고, 대학을 보내주지 못한다고…. 나를 일찍 고아를 만들었다고… 여러가지 이유로 아버지를 제 마음 안에서 밀어내고 있었어요. 아버지를 많이도 오해했고, 제가 생각하고 싶은 대로만 아버지를 생각했어요.

이런 모습들에 가려져서 자상하셨던 아버지를, 어딜 가나 자식을 챙기시던 아버지를, 어머니를 열렬히 사랑했던 아버지를, 가족들에게 헌신적이셨던 아버지를 보지 못했습니다. 어린 날의 눈으로만 아버지를 보고 가슴으로는 아버지를 보지 못했어요. 그때의 저는 지금처럼 성숙하지 못했거든요.
하지만 이제는 아버지를 가슴으로 봅니다. 아버지 나영이를 용서해 주실래요? 아버지가 제 귓가에 이렇게 속삭이실 것 같아요. " 용서할 것이 없단다. 사랑하는 내 딸 나영아 " 이렇게요. 사실 마음에서 아버지를 보내드리고 싶지 않았어요. 안 좋은 기억이라도 간직하고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10년이 넘게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에 대해서 울지 않았어요. 그 애도를 2년 전부터 하기 시작했어요. 그냥 한 두 번 울면 되겠지 하고 생각했던 애도가 생각처럼 짧지 않았어요.
옛날에는 부모가 돌아가시면 삼년상을 치렀다고 하는데 이 애도의 기간을 지나면서 그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아요. 부모란 아버지란 자식에게 어떤 의미인지 얼마나 큰 산이고 바위인지 얼마나 큰 나무 그늘인지요. 이 애도의 기간을 거치며 참 많은 것들을 알았어요. 그 중에 가장 기뻤던 건 말씀이 없으시고 무뚝뚝하셨던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버지가 저를 참 많이도 아끼고 사랑하셨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리고 제가 얼마나 간절히 아버지와 사랑을 나누고 싶었고 소통하고 싶었는지도요. 후회가 많이 됐어요. 아주 큰 것부터 작은 것까지 살아계셨을 때 이렇게 해드리고 저렇게 해드릴 걸 하는 후회들이요. 아버지 할 말이 정말 많은데 이제 여기까지 써야 해요. 아버지 나 이제 이 죄책감 훌훌 털어버리고 행복할게요.
아버지가 제일 바라는 것일 테니까요. 아버지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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