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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나는 왜 불안할까?

김혜진 고산도서관 사서
김혜진 고산도서관 사서

티베트에는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라는 속담이 있다. 이처럼 걱정과 불안은 누구나 느껴봤을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 중 하나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느끼는 불안은 좀 지나친 감이 있다.

출근길 현관을 나선 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부터 내 불안은 시작된다. '현관문은 제대로 닫혔나? 문 닫히는 소리가 안 난 것 같은데?', '가스레인지랑 선풍기는 껐나? 과열로 불이 나면 어쩌지?' 근무 중에도 나의 불안은 계속된다. '오늘 있을 발표에서 또 목소리가 떨리고 얼굴이 빨개지겠지? 그나저나 아이는 별 탈 없이 잘 있을까?' 퇴근 후에도 여전히 '생각만큼 일이 진행되지 않았는데? 아참, 며칠 뒤에 있을 그 일은 어떡하지?'와 같은 생각들이 나를 옥죄어 숙면을 취해 본 기억조차 없다.

아주 사소한 일에도 민감하게 반응해 결국에는 항상 걱정거리를 만들어 낸다. '불안(不安)'의 사전적 정의는 '마음이 편하지 아니하고 조마조마함'이다. 나는 하루 종일 '조마조마'한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 고민을 찾고 만들어내는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얼마 전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퀴즈로 출제되며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기도 한 용어가 있다. 바로 램프 증후군(Lamp syndrome)이다.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이 없는 일에 대해 마치 알라딘이 요술 램프 속 요정 지니를 불러내듯 수시로 꺼내 보며 걱정하는 현상이란다. 쓸데없는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불안감이 형성되며, 집중이 힘들고 피로감이 동반되는 등 다양한 증상이 난다.

미국의 심리학자 어니 젤린스키는 사람이 하는 걱정의 4% 정도만 우리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 말했다. 결국 96%의 걱정은 하나마나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하고 있는 것일까?

아무래도 모든 것이 완벽해야만 한다는 강박에서 비롯된 것 같다.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본다. 노트 한 권을 전부 손글씨로 채워야하는 과제가 있었다. 마지막 장까지 마무리하고 다시 확인하던 중 삐뚤어진 글자 하나를 발견하고는 참을 수 없어 새 노트를 꺼내 처음부터 다시 써내려갔다. 지우개로 지운 자국조차 참을 수 없었던 것 같다. 대학 시절 시험기간에는 암기한 내용을 잊어버릴까 밤을 새거나 시험장에서의 긴장감을 미리 상상하며 과민성 대장 증후군을 앓기도 했다.

불안은 결국 어떤 상황을 감당할 수 없다는 내 자신에 대한 불신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그렇게 돼도 난 감당할 수 있다'라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생겨야 벗어날 수 있다. 또한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우리는 늘 불안과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다. 운명인지도 모른다.

쓸데없는 걱정과 염려로 나를 괴롭히기보다는 적절한 불안을 인정하고 일상의 스트레스를 관리하며, 작은 일이나마 조금씩 성공의 경험을 쌓아가려는 자세를 견지할 필요가 있다. 걱정은 내일의 슬픔을 덜어주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힘을 앗아가는 것이다. 내일 걱정은 내일의 나에게 양보하자. 막연한 걱정과 불안으로 '오늘'이라는 '행복'을 흘려보내지 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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