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골목가의 우리 서점을 찾아오는 방법은 네 가지쯤 있는데 그중 금호강둑을 따라 오는 길을 좋아한다. 아양기찻길을 건너자마자 곧바로 왼쪽 모퉁이를 찾아 들어야 하기에 내비게이션도 감히 추천하지 않는 숨은 코스다. 여행이란 누가 알려주지 않는 곳에서 비로소 발생하므로 동네를 여행하려면 이처럼 골목길로 접어드는 것이 첫걸음이다.
은근히 차량 흐름이 끊이지 않는 이 강둑길에는 나름의 룰이 있다. 좁다란 길로 들어선 지 몇 초 안 지나면 맞은편에서 오는 차와 맞닥뜨리는 고난도를 체험할 수 있다. 이때 두 차량 중에서 사정이 나은 쪽이 반드시 비켜서 주는 게 이 동네의 법칙이다. 그것도 상대방이 망설이거나 난감해지기 전에 신속히 멈춰주는 것이 특징이다. 상대가 원하기 전에 배려해야 진정한 배려이기 때문이다.
만약 항공촬영을 할 수 있다면 자그마한 차들이 비좁은 길을 찾아 들어가 서로 비켜주고 양보하는 모습이 흐뭇하게 비칠 것이다. 또한 그 곁의 벚나무 터널길을 걷는 사람들, 또 그 너머로 유유히 흐르는 금호강의 장관이 펼쳐질 것이다. 항공촬영 동영상 끄트막에 '살기 좋은 도시, 대구'라는 공익성 자막이 등장해도 어색하지 않을 장면이다.
운전 중 여러 번 감사함을 느낀 뒤로 이제는 나 또한 먼저 비켜주는 일을 즐기게 되었다. 저만치서 낯선 차가 들어오면 벌써 멈춰줄 자리를 확보하고 기다린다. 그러면 대부분의 차는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 비상등을 두 번 깜빡이고 지나간다. 간편하고도 즉각적이어서 마음에 드는 인사 방식이다. 10초간의 기다림은 2초간의 화답으로 금세 보상받곤 한다.
이 경험 때문인지 나는 주차장에서 스마트키를 누를 때에도 비상등을 두 번 깜빡이는 내 차가 나에게 인사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나, 여깄어. 오래 기다렸어"라는 식으로 말을 건네는 것이다. 도스토옙스키 '백야'에 나오는 청년이 건물들과도 인사를 나누며 산책한 것을 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우리 서점 건물도 어쩌면 이미 행인들에게 말을 건네고 있는지 모른다. "여기 아늑해요, 오래 머물다 가요."
나보다 좀더 성격이 급한 서점 식구들은 오래된 강둑길로 들어서는 일을 그리 반기지 않지만, 맞은편 차에 길을 양보하며 잠시 강둑의 풀꽃을 바라보는 일은 소중한 일상이 되어버렸다. 두 달 전부터는 이 강둑길에 꽃을 심고 있다.
주민 대부분이 저녁을 먹고 TV를 볼 무렵, 서점 식구들은 몰래 강둑으로 향한다. 책방의 맏언니께서 목장갑을 끼고 "가자!" 외치면 물뿌리개를 들고, 모종삽을 챙겨 게릴라 가드닝을 하는 것이다. 인근 불로화훼단지에서 사온 우단동자, 아욱꽃, 메리골드, 천일홍 등을 심고 '우리 동네 공동 정원'이라는 미니 팻말까지 꽂으니 더 눈길이 간다.
내비게이션이 잘 알려주지 않아도 엄연히 존재하는 강둑길. 이곳을 오가는 주민들은 이제 상대를 위해 기다려줄 때 이 꽃들을 보며 쉬게 될 것이다. 골목에 살면서 인사를 건네는 방식을 또 한 가지 배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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