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양군 수비면 죽파리 검마산 자락.
솔숲을 몇 굽이 지나 마침내 다다른 그곳.
흰옷을 두른 나무들이 파노라마처럼 끝도 없습니다.
앞에도 옆에도 온통 쭉쭉 뻗은 하얀 기둥 뿐.
저마다 가지를 털고 키 높이 대회가 한창입니다.
물소리, 새소리, 나뭇잎을 타고 노는 바람 소리.
매미도 쉬어 우는, 스마트폰도 부질없는 곳.
인적 드문 첩첩산중에 숨은 저 숲을 보겠다고
한걸음에 달려 온 중년 부부도, 나홀로 여행객도
어쩜 이리도 착하게 컸냐며 넋을 놓았습니다.
나무 고향은 위도 40도 위쪽 추운 나라지만
영양군의 보살핌에 용케도 쑥쑥 잘도 자랐습니다.
'자작자작' 타는 소리는 그대로 이름이 됐습니다.
껍질에 기름기(유분)가 많아 이 만한 불멍도 없습니다.
호롱불이 귀한 시절엔 촛불을 대신했습니다.
자작나무 화(樺) 촛불 촉(燭), 화촉.
신혼 첫날밤을 밝히던 '사랑의 불'이었습니다.
얇고 흰 껍질은 종이로, 화폭으로 그만이었습니다.
여러 겹 덧댄 맨 위엔 고운 껍질을 누볐습니다.
신라인은 여기에 천마도를 남겼습니다.
나무는 곧고 단단한데다 뒤틀림도 적어
팔만대장경, 도산서원 목판으로 썼습니다.
지금껏 온전한 것도 잘 썩지 않는 유분 덕입니다.
한방에서도 자작나무는 팔방미인입니다.
껍질, 화피(樺皮)는 동의보감에도 올랐습니다.
청열이습(淸熱利濕),
열을 내리고 습기을 쳐내며
거담지해(祛痰止咳),
가래와 기침을 멎게한다 했습니다.
충치를 예방한다는 자일리톨도 여기서 뽑았습니다.
뿌리·줄기·수액 모두 약성을 갖춰 버릴 게 없습니다.
자작나무 천국 북유럽에선 만병통치약으로 통했습니다.
평균 수령 30년, 평균 높이 20미터.
30.6ha에 12만 그루가 촘촘한 영양 자작나무 숲.
숲 크기는 강원 인제 원대리의 세 배에 이릅니다.
솔잎혹파리 피해를 본 1993년, 산림청이
이 나무를 골라 조림한 게 신의 한 수였습니다.
촛불로, 종이로, 목재로, 한약재로 쓰이더니
이젠 경북 최고 치유림, '핫 플레이스'가 됐습니다.
백옥 같은 피부결로 후련하게 뻗어 오른 숲.
코로나19에 속상한 마음도 싹 데리고 갔습니다.
돌아서기 아쉬운,
아낌없이 품어 주는 자작나무 숲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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