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멋대로 그림읽기]나상미 작 '그럴듯한(Candyfloss)'

Oil and acrylic on canvas, 120x100cm, 2021

나상미 작 '그럴듯한(Candyfloss)' Oil and acrylic on canvas, 120x100cm, 2021

먼 훗날 역사학자가 인류세 기간 중 21세기 현재 상황을 정리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두 사건을 꼽으라면 '코로나19 팬데믹'과 '메타버스'(Metaverse)일 것이다.

지금 세계는 변이를 거듭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적과의 싸움에 여념이 없다. 이런 가운데 코로나 '이전'과 '이후' 인류의 삶은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단정할 수 없지만, 분명 변화의 바람을 겪지 않을 수 없다. 이와 동시에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을 두 축으로 한 '메타버스'라는 3차원 가상세계의 등장도 이전과는 다른 삶의 양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나상미 작 '그럴듯한(Candyfloss)'은 보는 순간 시선을 확 잡아 끄는 마력이 있다. 그 이유는 '팬데믹 상황'과 '메타버스'라는 현재의 인류세가 지닌 변화의 두 축을 한 폭의 회화 속에 고스란히 담아놓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실을 옥죄는 바이러스의 공격 속에서 우리는 어디론가 안전한 곳을 찾아 도피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나상미는 그 도피처를 바닷가 야자수 그늘 아래서 책을 읽는 인물로 형상화했다. 재미있는 건 바다가 에머럴드빛이 아니라 붉은 색으로 표현됐고, 정작 책을 읽고 있는 자신이 있는 땅을 푸른 바다 빛으로 나타내고 게와 조개를 살짝 그려넣었다. 이런 역발상은 가공과 추상의 세계인 메타버스에서 매우 흔한 일이다. 가상세계에서 현실의 바다는 굳이 푸른 빛깔일 필요는 없다.

단순한 색채와 간결한 선으로 동시대적 상황과 내면의 감정을 이렇듯 적절하게 추상과 형상의 경계를 넘어가며 한 점의 회화로 표현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판에 박힌 색감을 뒤집는 과감한 전환과 얼굴 대신 상자를 뒤집어쓴 인물을 통해 감상자의 시선을 오히려 더 잡아 끌게 하는 회화적 연출력은 나상미적인 조형언어로서 조금의 손색도 없어 보인다.

이는 시대의 트렌드가 된 디지털 세계를 깊이 경험하고 오랫동안 함께한 시간들이 쌓여감으로써 디지털 세계, 즉 메타버스가 다 채워줄 수 없는 회화만의 강력한 매력을 포착한 작가가 시대의 분위기가 담긴 그림으로 새로운 창을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나상미는 미국에서 태어나 상사원인 아버지를 따라 어릴 적부터 해외에서 줄곧 살면서 여러 문화를 경험했고 영어, 스페인, 라틴어를 배웠다. 초등학교 때부터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영국식 교육을 받았고 영국첼시예술대학에서 학사를, 영국왕립예술학교에서 석사를 마쳤다.

'우물 안 개구리'의 시각을 일찌감치 벗어나 새로운 글로벌 예술의 장에서 회화를 익힌 작가에게 지구촌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가상의 디지털 세계가 회화의 오브제가 됨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림 제목 'Candyfloss'는 '솜사탕'이란 뜻 외에 '겉모습만 그럴듯한'이란 뜻도 내포하고 있다. 온전한 감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VR과 AR이 아무리 시대적 발전의 산물일지라도 낯선 것은 매한가지이다. 글자 그대로 '겉모습만 그럴 듯한' 세상에서 일기를 쓰듯 일상의 일들에 대한 기억, 생각, 감정을 따라 캔버스 위를 유영하고 있는 나상미의 회화는 외양은 변하더라도 본질은 쉽게 변하지 않는 내면의 깊은 심리적 세계를 '메타버스'적 수단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현재 런던에서 활동하고 있는 나상미의 다음 작품 세계가 어떻게 펼쳐질지 벌써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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