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도쿄올림픽이 개막했다. 하지만 개회식에서부터 불거진 올림픽 중계방송 관련 논란들은 갖가지 또 다른 논란들로 이어졌다. 과거와 그리 달라지지 않은 중계방송이지만 어째서 논란들이 이토록 많아지게 된 걸까.
◆MBC 개회식 중계방송에 쏟아진 논란들
아마도 올림픽 역사상 초유의 무개념 방송이 아니었을까. 도쿄올림픽 개회식 중계에서 MBC는 입장하는 우크라이나 선수단 위에 체르노빌 원전 사진을 넣었다. 1986년 터진 최악의 원전사고로 여전히 그 상처가 남아있는 사건을 소개 사진으로 넣었다는 건 몰상식한 일이었다.
JTBC '비정상회담'에 나왔던 러시아 방송인 일리야는 트위터에 분노를 표했다. "이 자막 만들면서 '오? 괜찮은데?'라고 생각한 담당자, 대한민국 선수들이 입장했을 때 세월호 사진 넣지, 왜 안 넣었어? 미국은 9.11 테러 사진도 넣고? 도대체 얼마나 무식하고 무지해야 폭발한 핵발전소 사진을 넣어?"라고 썼다.

하지만 이런 부적절한 방송은 실수가 아니었다. 이날 개회식 중계방송에는 이밖에도 상식 바깥의 사진과 자료들이 쏟아졌다. 엘살바도르 선수단이 입장할 때는 비트코인 사진을 넣었고(엘살바도르는 세계 최초로 비트코인을 법정 화폐로 채택해 자국에서 반대 시위가 일고 있는 상황이다.), 아이티 선수단이 입장할 때는 '대통령 암살로 정국은 안갯속'이라는 자막 소개가 붙었다. 마셜제도 소개 화면에서는 '한때 미국의 핵실험장'이라는 문구를 넣었다. 이 정도면 실수가 아니라 무개념이고 방송사고 정도가 아니라 방송재앙에 가까운 참사다.
이 참사는 일파만파 후폭풍으로 이어졌다. 국제적인 망신이라는 비판이 국내외 상관없이 쏟아졌고 미국 뉴욕타임스, CNN, 영국 가디언 등 외신들도 신랄한 비판을 내놨다. 하지만 MBC의 올림픽 중계방송 논란은 이게 끝이 아닌 시작이었다. 바로 다음 날 한국과 루마니아전 축구 경기 중계 광고 중에, 마치 자책골을 넣은 루마니아 마리우스 마린 선수를 조롱하는 듯한 '고마워요 마린, 자책골'이라는 자막이 들어간 것. 시청자들은 스포츠맨십에 어긋나는 상대팀 조롱이라는 비판을 쏟아냈다.

결국 박성제 MBC 사장이 기자회견을 열고 공식 사과했다. "전 세계적인 코로나 재난 상황에서 지구인의 우정과 연대, 화합이라는 올림픽 정신을 훼손하는 방송을 했다"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사태 경위와 사후 조치에 대해서는 애매한 표현을 내놨다.
"특정 몇몇 제작진을 징계하는 것에서 그칠 수 없는, 기본적인 규범 인식과 콘텐츠 검수 시스템의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는 것. 원인 파악과 책임 추궁을 약속했지만 '시스템의 문제'라는 말은 어딘가 찜찜함을 남겼다. 그래서였을까. MBC의 중계방송 사고는 그 후에도 계속 터져 나왔다.
유도 안창림 선수가 동메달을 따자 MBC 캐스터는 "우리가 원했던 색깔의 메달은 아닙니다만"이라는 부적절한 멘트를 내놨다. 축구, 야구, 배구가 동시에 경기를 치렀던 지난달 31일 한일전을 치른 배구만 승리했을 때도 엉뚱한 자막 삽입으로 악의적인 오해의 소지를 만들었다. 이날 김연경 선수와 나눈 인터뷰 영상에서 김연경 선수는 "감사하다. 더 뿌듯하다"고 답했는데 "한일전으로 국민들에게 희망을 줬다"는 기자의 말에 답한 것이었다. 그러나 자막에는 '축구, 야구 졌고 배구만 이겼는데?'라고 들어가 있었다. 김연경 선수가 배구만 이겨 더 뿌듯하다고 답한 것처럼 보인 것이다.

◆MBC만의 문제일까
워낙 MBC의 무개념 방송이 준 충격이 커서인지 가려진 면은 있지만, 이런 문제는 타 방송사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SBS는 개막식 중계에서 '간호사 복서' 스바사 아리사가 트레드밀(런닝머신)에 올라 달리는 퍼포먼스를 할 때 "홈트레이닝을 하는 모습인데 홈쇼핑하는 느낌도 나네요"라고 중계해 비하 발언이 아니냐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KBS는 여자 탁구 대표 신유빈과 룩셈부르크 니시아리안의 경기 중계에서 상대 선수가 나이가 많다는 걸 이유로 "탁구장 가면 앉아 있다가 갑자기 오시는 숨은 동네 고수 같다"는 표현으로 시청자들의 질타를 받았다. 사실 58세의 나이에도 국가를 대표해 나온 니시아리안 선수는 '백전노장'으로 그 자체만으로도 인상적인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 능숙한 경기 운영을 심지어 "여우같다"고 표현하는 중계진의 무개념에 시청자들은 불편함을 토로했다.
박성제 MBC 사장은 '시스템의 문제'라고 했지만, 올림픽 중계를 둘러싼 크고 작은 논란들의 근본적인 문제들을 찾아 들어가면 거기에 어른거리는 '시청률 경쟁'의 그림자가 보인다. 특히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국가적인 스포츠 중계는 지상파들의 플랫폼 경쟁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던 이벤트들이었다.

그래서 스포츠 스타를 해설자로 영입해 경쟁을 벌이고, 중계방송도 마치 예능프로그램을 보듯 재미 중심으로 연출하는 것이 경쟁적으로 이뤄졌다. 그저 스포츠 스타라는 이유로 발탁된 해설자들 중 전문성을 찾아보기 힘든 '막말 해설'이 등장한 건, 월드컵 시즌에서부터 종종 있었던 일들이다.
결국 방송사들의 치열한 중계 경쟁이 예능화를 가속화시키고 그러다 보니 부지불식간에 '막말', '무개념' 중계가 쏟아져 나오게 됐다는 것이다. 이건 어느 방송사 하나의 시스템 문제가 아니라, 올림픽 같은 국가 스포츠중계를 독점해온 지상파 전체의 시스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스포츠 중계, 이제는 '국뽕'과 '혐오'를 넘어야
올림픽 같은 국가스포츠가 국제적인 이벤트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건 물론 국가주의 시대에 스포츠를 통한 국민들의 단합 같은 요소들이 막강한 힘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양성을 존중하는 글로벌 시대에 들어서면서 국가스포츠를 보는 대중들의 관점은 상당 부분 변화하고 있다.
이른바 무조건 '국뽕'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편 선수라고 해도 잘했다면 아낌없는 박수를 쳐주는 '호혜적인 정서'가 만들어진 것. 물론 이것이 본래 '올림픽 정신'이었지만 그래도 국가주의 시대가 다소 뒤로 밀어냈던 그 정신이 이제 글로벌 시대에 본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고 할까.

올림픽 같은 국가적인 스포츠 중계의 문제는 그래서 지상파들의 경쟁만이 아니라, 이렇게 달라진 대중들의 정서와 관점을 따라가지 못하는 구시대적 중계에서도 발생한다. 예를 들어 '태극 전사', '영웅', '도쿄대첩' 같은 표현이 여전히 중계에서 빠지지 않지만 그것 역시 마치 스포츠를 전쟁에 비유하던 구시대적 중계 관습이라는 지적이 그것이다.
SBS가 자사의 올림픽 중계를 홍보하기 위해 만들었던 중계진들의 '독립투사 퍼포먼스' 영상이나 '야인시대'를 패러디해 김두한 퍼포먼스를 담은 영상은 대표적이다. 이들 영상들은 지나친 한일 갈등을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았다.
또 '얼음공주', '여전사', '여우처럼 경기하고 있다' 같은 중계진들의 표현 속에 담겨진 성별 고정관념이나, 지상파 3사 캐스터들이 MBC에 단 한 명의 여성을 빼고는 모두 남성이라는 성비 불균형의 문제도 지목됐다. 이런 성비 불균형은 성차별적 표현들이 중계에서 반복되는 이유라는 것.
이번 올림픽 중계의 논란들은 외신에서도 관심을 가지며 비판을 쏟아냈다. 이에 대해 대중들이 보이는 태도는 이례적이다. 그저 국뽕의 관점으로 그 비판에 반발하기보다는 공감하는 분위기가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시대가 바뀌고 있고 대중들도 관점이 달라지고 있다. 이번 올림픽 중계에서 유독 논란들이 많이 터진 건 이러한 시대와 대중들의 변화에 발맞추지 못한 지상파들의 구태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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