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의 판도를 바꾼 레이더의 도입, 인류의 라이프 스타일을 통째로 바꿔 놓은 스마트폰의 등장. 접점이 없어 보이는 이 두 사건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처음 공개됐을 때, 다수가 미친 아이디어라고 손가락질했다는 점이다. 달에 우주선을 보내는 것과 같이, 모든 이들의 관심을 받는 중요한 프로젝트를 '문샷'(moonshot)이라고 한다. 반대로, 비현실적이고 어찌 보면 바보 같기에 다수가 홀대하는 프로젝트를 물리학자 사피 바칼은 '룬샷'(loonshot)이라고 명명한다. 놀랍게도, 역사에 영향을 끼치는 큰 혁신은 바로 이 미친 아이디어, '룬샷'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미국에는 '쿼키'(Quirky)라는 기업이 있다. 오직 회원들의 아이디어만을 가지고 자체적으로 개발, 제조를 거쳐 유통까지 하는 것이 쿼키의 역할이다. 물론, 아이디어는 특정 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쿼키 또한 전문가 집단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쿼키는 아이디어 하나만으로 상품화를 가능하게 해 '꿈을 실현해 주는 공장'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많은 이들이 창업을 어렵게 생각한다. 훌륭한 아이디어와 이를 구현해 낼 기술이 완벽하게 갖춰져야만 창업이 가능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쿼키의 경우처럼 아이디어를 고도화하는 방법은 무수히 많고, 전문가가 아닐지라도 기술을 구현할 방법은 있다. 어떤 도전은 무모해 보이고, 때로는 불가능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무모한 도전을 성공으로 이끌며 이러한 생각을 훌륭하게 반박한 사례가 있다.
삼성전자 사내 벤처 프로그램인 C랩 과제 선정에 한 팀이 뇌파를 감지해 뇌졸중을 예고하는 모자 '뇌예모'를 만들겠다고 나섰다. 그 팀은 의학적 지식도, 구현 능력도 없었지만, 초기 뇌졸중을 예견할 수 있는 혁신이 되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도전장을 내밀었다. 과제 심사가 진행된 5월 8일 어버이날, 다음 해 오늘 내 손으로 만든 모자를 어머니께 선물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며 발표를 마친 뇌예모 팀은 청중평가단에게 최고 점수를 받았다. 당당히 1위 과제로 선정된 이 아이디어는 이후 본격적인 프로젝트로 진행되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품질관리 직원 3명과 신입 SW 엔지니어 2명. 즉 관련 전문성도 없고, 논문 한 편 써본 적 없는 팀원들로 구성된 뇌예모 팀에게 의학 영역 중에서도 가장 어렵다는 뇌 관련 디바이스를 만드는 일은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이었다. 초기 6개월은 아무 진전이 없었다. 아무리 논문과 전공 서적을 읽어도, 모니터 속 데이터가 뇌파인지 노이즈인지 구분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대학교수, 종합병원 의사 등 관련 분야 전문가들을 찾아 자문한 끝에 뇌파의 정상 여부를 판별하는 알고리즘을 만들어냈다. 이후 6개월간 수백 번 실패를 거듭한 결과, 뇌파 추출 성공률 1%에서 시작한 연구는 성공률 99%에 이르게 됐다.
당시 뇌예모 팀의 멘토였던 임원은 이들을 이렇게 평한다. "전공자들보다 진행 속도가 훨씬 빠르다. 이들은 통상적으로 6주가 걸리는 외부 프로토타입 모델 제작 과정을, 직접 3D 프린터를 만들어 단 이틀로 줄여 버리는 정도다. 뇌예모 팀은 무서울 정도로 도전적이었다." 전문가 한 명 없이 아이디어 하나만으로 시작했던 프로젝트가 삼성전자 창조상 1위 수상, 팀 리더 1직급 특진과 함께 글로벌 특허를 취득할 만큼 뚜렷한 성과를 냈다는 점에서, 이들은 능력 있고 준비된 자만이 도전에 성공할 수 있다는 통념을 깨는 좋은 사례가 되었다.
원대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비현실적으로 보일 정도로 과감한 도전, 룬샷이 필요하다. 이 도전은 마치 맨땅에 헤딩하는 것처럼 느껴질지라도 괜찮다. 주저하지 않는 도전 정신, 끈질기게 붙들고 늘어지는 끈기, 무모한 아이디어를 수용하는 주변의 환경이 만나면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방법은 생겨나기 마련이다. 다행히, 무모하고 과감한 도전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도 점차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기억하자. 세상을 바꾼 위대한 혁신은 바보 같은 아이디어와 주저하지 않는 도전에서 시작되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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