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취임 직후 네덜란드 ASML이 생산하는 반도체 생산 장비인 차세대 극자외선(EUV)의 대중국 수출을 금지하였다. 동시에 중국 최대의 통신장비업체인 화웨이의 5G 생산에 사용되는 반도체와 배터리의 공급도 못 하게 했다. 이와 함께 미국 정부는 반도체 칩, 웨이퍼와 배터리, 초고속 데이터 통신망 등 인프라 구축을 위해 총 2조3천억 달러(약 2천500조 원) 규모의 인프라 투자를 추진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4월 삼성전자와 TSMC 등 19개 기업 대표가 참석한 '반도체 및 공급망 회복 최고경영자 회의'에 참석해 공격적인 투자를 주문하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10분가량의 연설에서 미국을 19차례, 투자를 18차례 언급하면서 국제적으로 분업화된 반도체 공급망을 미국 중심으로 재편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기업들도 화답하고 있다. 대만의 TSMC는 미국 애리조나주에 기존 발표한 120억 달러에 추가하여 2023년까지 1천억 달러 투자 계획을 발표했고, 인텔도 200억 달러를 들여 2개 생산 라인을 증설한다. 인텔의 팻 겔싱어 대표는 "공격적인 투자로 2025년 반도체 시장에서 TSMC와 삼성전자를 앞지르겠다"고 선언했다. 5월 21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의에서 삼성·현대·SK도 미국 내에 총 394억 달러(약 44조 원) 투자 계획을 공개하였다.
이에 앞서 중국은 2015년 11월 제13차 5개년계획에서 소강(小康)사회 실현과 함께 '제조 2025' 전략을 발표하였다. '제조 2025'는 중국의 제조업을 2025년까지 독일과 일본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2045년에는 미국을 넘는 제조업 강국을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210억 달러의 기금을 조성하여 스마트 제조, 고급 장비 혁신 등 5대 프로젝트에 차세대 정보기술, 신소재, 첨단 로봇, 바이오 등 10대 핵심 산업을 집중 육성한다.
미국 통상대표부(USTR)는 '301조 조사 보고'에서 '중국 기업의 대미 투자는 중국 정부가 개입하여 미국의 첨단기술 획득을 목적으로 하는 기술 탈취형'이라고 평가하였다. 실제로 미국의 대중국 투자는 70%가 공장을 새로 짓는 Greenfield형인 데 비해, 중국의 대미 투자는 93%가 기존의 첨단기업을 인수하는 M&A였다.
바야흐로 세계는 지금 전쟁 중이다. 총구를 맞대는 것이 아니라 첨단기술을 선점하기 위한 전쟁이다. 미국은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차단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반도체가 주 타깃이 되고 있는 것은 일자리와 전후방 산업연관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반도체는 국가안보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패권을 가리는 핵심 요소이다.
1980년대 초 삼성, 현대, LG는 반도체 산업에 진출하였다. 당시 수많은 학자들과 정부 부처에서도 무모한 투자라고 반대하였다. 더구나 삼성은 수원에서 그린벨트를 일부 허물어야 했고, 현대는 이천에서 절대농지를 변경해야 했다. 둘 다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기술자를 찾는 것은 물론 자금 조달도 지난한 일이었다.
당시는 세계적으로 반도체 공급과잉 상태로서 미국은 일본 기업을 상대로 반덤핑과 301조 제소를 남발하면서 생산설비 축소를 요구하고 있었다. 1986년 7월 미-일 반도체 협정이 타결되어 일본은 반도체 생산설비를 축소하고 최저수출가격제를 실시하였다. 이런 와중에 이병철 회장과 정주영 회장은 그룹의 명운을 걸고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였다.
한국의 반도체 기업이 약진하자 미국과 유럽은 한국 기업에 대해서도 반덤핑과 상계관세 부과, WTO 제소 등 무차별적 전쟁을 일으켰다. 그러나 한국 기업들은 꿋꿋하게 약진하였다. 오히려 TI 등 미국의 세계적 기업과 도시바를 포함한 일본 기업들은 반도체 사업에서 철수하였다.
세계가 우리를 부러워하는 것은 단지 1인당 소득이 올라갔다는 것뿐 아니라 반도체와 자동차 등 첨단 제품 시장에서 우리 기업들이 우뚝 서 있기 때문이다. 치열해지는 경제 전쟁 속에 이재용 부회장이 가석방되었다. 만시지탄이나 다행한 일이다. 나아가 세계로 날아다닐 수 있도록 나머지 족쇄도 풀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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