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감기 걸렸어(최춘해 글 / 브로콜리숲 / 2021년)

우리의 몸은 하나지만 생각은 수만 가지 형태로 나타났다 사라지고, 때론 화석이 되어 하나의 가치로 자리 잡는다. 시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시인의 손길로 한 편의 시가 탄생한다. 하지만 각각의 사람들이 읽을 때마다 거듭해서 새로 태어난다. 읽는 사람의 가치, 환경 등에 의해 같은 시면서 서로 다르게 흡수된다.
동시는 다르다. 읽는 사람은 달라도 고정불변의 동시로 있다. 동시에는 동심이 있기 때문이다. 동시는 사물, 상황의 내면과 이면을 동심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끈이다. '엄마가 감기 걸렸어'는 13년 만에 세상에 나온 최춘해 시인의 14번째 동시집이다. 1부는 동심, 2부는 사랑, 3부는 자연, 4부는 가치 있는 삶을 주제로 꾸며져 있다.
시인은 제자들에게 "우리는 情(정)으로 산다, 情은 사랑이지요. 작품의 밑바탕이 되는 것은 사랑입니다. 이 사랑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작품과 사람 됨됨이는 같아야 합니다. 아무리 글을 잘 쓴다 하더라도 글을 쓰는 사람이 아름답지 못하면, 그 글은 빛깔을 잃어버리게 됩니다."라고 강조한다.
물이 바다로 갈 수 있는 것은/ 흙이 물 앞에서/ 낮게 엎드려 따라오라고/ 안내를 해 주기 때문이다.// 흙은 늘 낮은 데로/ 안내를 한다.(흙85 낮게 엎드려 전문)
따뜻함은 전염성이 강하다. 따뜻함이 따뜻함을 불러들이는 식으로 파도타기를 하다 보면 어느새 행복을 안게 된다. 이 시가 주는 감상이 그렇다. 식물이 뿌리 내려 새 생명을 키울 수 있는 조력자 역할과 함께 따뜻한 안내자의 역할도 한다는 걸 알려 준다. 한편으로는 시인의 모습 그 자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할아버지가/ 화장실에서 심부름을 시키실 때는/ 꼭 할머니만 찾는다.// 할머니는 미리 알고/ 휴지나 안경을 들고 간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끼리만/ 만나는 화장실.(할아버지 심부름 전문)
아주 멋진 대저택이라도 그 자체만으로는 그림이 될 수 없다. 다른 무엇을 위해 존재할 때만 하나의 멋진 대저택이 될 수 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는 서로가 있어야 하나의 그림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시이다. 꾸밈없이 솔직담백한 이 시는 삶이 시가 되고 시가 곧 삶이 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마당에 나와 보니// 한 밥그릇 먹이를/ 어미 개, 아기 개// 어미 닭, 아기 닭/ 참새, 비둘기// 저마다 꼬리를 내리고/ 사이좋게 먹고 있다.(동생과 다투다가 전문)
이집트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사람이 죽어서 저승에 도착했을 때 신은 두 가지 질문을 한다. "인생에서 기쁨을 찾았는가?"와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주었는가?"이다. 이 두 질문은 우리의 삶을 대변하는 것이 아닐까? 인생에서 기쁨을 찾고, 또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었다면 가장 행복한 삶이 된다. 일희일비의 삶이지만 평범한 풍경에도 화났던 마음이 따뜻해지고 시야가 넓어지면서 기쁨을 얻는다.
어제의 나를 만나고 싶다면, 오늘의 행복을 찾고 싶다면, 내일을 꿈꾸고 싶다면, '엄마가 감기 걸렸어' 속 동심에 빠져볼 일이다.
최중녀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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