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는 1939년 한 달여 만에 폴란드를 점령한 뒤 군 지휘관들에게 프랑스 침공 계획을 세우라고 지시했다. 이에 장군들은 군사력과 병참 요소 등 객관적 자료를 바탕으로 승리하기 위해서는 1941년 이전은 물론 1942년에도 침공을 실행에 옮기기는 어렵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당시 프랑스의 군사력은 세계 최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히틀러는 이를 무시하고 1940년 봄까지 침공 준비를 완료하라고 지시했다.(실제로 독일은 1940년 5월 10일 프랑스를 침공했다) 그 근거는 군사력이 아니라 프랑스 국내 정세였다. 당시 프랑스는 1차대전 승전국이면서도 너무나 큰 피해를 입어 전쟁은 무조건 안 된다는 '절대적' 평화주의가 지배했다. 그 결과 독일의 위협이 현실로 다가오는데도 사회는 모른 척했다.
더욱 개탄스러운 것은 정부가 이에 뇌동(雷同)했다는 사실이다. 1930년 독일 총선에서 나치당이 원내 2당이 됐을 때 당시 프랑스 외무장관 아리스티드 브리앙은 "히틀러 씨가 무식하게 나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프랑스 정보 당국은 독일이 히틀러 집권 전부터 소련과 군사협력으로 군사력을 은밀히 증강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으나 국민에게 알리려 하지 않았다.
이런 흐름을 유심히 지켜보면서 히틀러는 지금의 프랑스는 1차대전 때 악착같이 물고 늘어진 그 프랑스가 아니며, 독일이 치고 들어가면 비틀거리다 항복할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전쟁은 히틀러의 예견대로였다. 프랑스는 단 6주 만에 항복했다.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3일 국회에서 "한미 연합훈련을 중단하면 북한이 남북 관계에 상응 조치를 할 것이고, 훈련을 하면 새로운 도발을 할 것"이라며 "대화의 모멘텀을 이어가고 북한 비핵화의 큰 그림을 위해 유연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지난 1일 '절망이냐 희망이냐? 선택하라'는 북한 김여정의 대남 협박에 '연합훈련을 하지 말자'는 취지의 굴욕적 대답을 한 것이다. 국가정보원장이 앞장서 북한의 하명을 받드느냐는 비판이 쏟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북한이 비핵화 의지가 있다면 한미 연합훈련과 상관없이 비핵화의 길을 갔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국정원이 앞장서 정권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안보를 팔아먹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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