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여당, 언론중재법 처리 강행 말아야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가 지난 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의 쟁점 조항인 징벌적 손해배상제 반대투쟁 릴레이 시위 중인 KBS노동조합의 허성권 위원장을 만나 발언하고 있다. 허위·조작보도 등 이른바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가 지난 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의 쟁점 조항인 징벌적 손해배상제 반대투쟁 릴레이 시위 중인 KBS노동조합의 허성권 위원장을 만나 발언하고 있다. 허위·조작보도 등 이른바 '가짜뉴스'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의무를 부과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지난달 27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법안소위에서 더불어민주당에 의해 강행 처리됐다. 연합뉴스
유광준 서울정경부 차장
유광준 서울정경부 차장

원내 과반 의석의 여당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을 뼈대로 한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 법률안' 처리를 밀어붙이고 있다.

언론 등의 고의·중과실로 인한 허위·조작 보도로 재산상 손해나 인격권 침해를 입은 사람은 손해액의 5배까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달 27일 야당의 반대에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이 법안을 강행 처리했고 조만간 열릴 전체회의에서도 다수결 처리를 예고하고 있다.

당장 멈춰야 한다. 민주주의 원리에 반(反)하는 시도이자 현 여권의 꼴불견 가운데 으뜸인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행태의 극치이기 때문이다.

1791년 제정된 미국의 수정헌법 제1조는 '연방의회는 언론, 출판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통령제의 '원조' 국가에서 언론이 어떤 '대접'을 받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대목이다.

미국은 자유로운 언론의 역할을 전제로 대통령제를 설계했고 지금도 그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국가권력을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로 나눈 것으로도 모자라 언론에 이들을 자유롭게 감시하고 비판할 수 있는 권리까지 부여했다.

왜 그랬을까?

개인의 자유를 극대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진 국가권력에 의해 개인의 자유가 침해되는 일이 없도록 이중 삼중의 견제 장치를 구축한 것이다. 권력기관 내부 또는 권력기관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짬짜미'를 막는 역할을 언론에 맡기고 헌법을 통해 그 활동을 보장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국가권력을 향한 언론의 감시와 비판을 사실상 무한대로 보장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국익에 부합한다는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다.

이 같은 취지에 공감해 우리도 헌법 제21조에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는 조항을 두고 있다.

특히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청와대로 권력이 집중돼 있는 우리나라에서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시도는 미국 기준으로 보면 '민주주의를 하지 말자'는 주장과 다르지 않다.

심지어 군주제였던 조선시대에도 삼사(三司: 사헌부·사간원·홍문관)를 통한 언로의 확보를 시도했다는 점을 상기하면 최근 여당의 움직임은 안타깝기만 하다.

물론 언론이 절대 선은 아니다. 스스로 권력이 되려고 몸부림치기도 했고 권력과 결탁하기도 했다. 지금도 '주의 태만'과 '실질적 악의'로 생산된 보도가 부지기수다. 제 눈의 들보는 보지 않는 언론인들의 티눈 뽑기도 현재진행형이다.

하지만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특히 개탄스러운 점은 지금까지 필자가 푼 '썰'이 모두 이명박 정권 때인 이른바 '광우병 파동' 당시 '민주당'이 정부를 향해 쏟아낸 주장과 같다는 사실이다.

그때 정부는 일부 언론이 부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만든 기사로 국민을 현혹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을 상대로 파상공세(소송전)를 폈다.

2009년 6월 검찰이 '긴급취재: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 프로그램을 만든 MBC 'PD수첩' 제작진 5명을 불구속 기소하자 정세균 당시 민주당 대표는 "명백한 언론 탄압"이라며 "정부를 비판하는 것은 언론의 사명인데 이를 명예훼손과 업무방해로 기소하면 정부를 비판하는 제작은 하지 말라고 겁주는 것이 아닌가"라고 반발했다.

'지금(그때)은 맞고 그때(지금)는 틀리다'는 그저 영화 제목이기만 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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