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어디서든 '아카이브'라는 말이 유행처럼 들려온다. 비로소 아카이브 시대가 온 것일까. 하지만 아카이브는 어디에든 붙이면 끝나는 손쉬운 수식어가 아니다. 아카이브는 생각보다 무겁고, 복잡하고 힘든 일이다. 아마 그 무게를 안다면 아카이브를 쉽게 붙일 수 없을 것이다.
문화예술 아카이브를 시작한지 어느덧 1년을 넘어섰다. 세밀하게 계획해서 시작했지만, 막상 예술자료 수집과 정리를 본격화하고 보니 현실에서 부딪히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자료들이 넘쳐났다. 기록학과 문헌학을 토대로 한 학문적인 접근보다, 이제는 현실에 적용 가능한 매뉴얼 정비가 필요했다.
아카이브 업무를 먼저 시작한 기관의 실무자를 찾아 나섰다. 서울 국립극장 공연예술박물관과 아르코 예술기록원 수장시설을 둘러보고 조언을 구했다. 막막하기만 했던 1년 전과는 다른 기분이었다. 우리가 그동안 수집한 자료들의 양과 질이 꽤 괜찮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대구 문화예술아카이브에 소장된 자료를 슬쩍 들려주며 자료의 질을 견줘보기도 했다.
6‧25 전쟁기 예술가들의 자료 등을 이야기하니, 두 기관 전문가들은 '어디든 잘 보관되어 있으면 된다'고 말했다. 좋은 자료를 경쟁하고 앞 다퉈 소장하려는 경쟁보다 '공유'에 대한 믿음이 깔려 있었다.그리고 얼마 뒤 국립국악원‧국립무형유산원‧국립아시아문화전당‧국립중앙극장‧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 5개 문화예술기관의 업무 협약 뉴스가 전해졌다.
앞서 지난 2018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제외한 4개 기관이 같은 내용으로 업무협약을 맺고 연극‧무용‧음악‧국악‧전통연희 등 다양한 장르의 자료를 한 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공연예술 아카이브 네트워크 통합검색 서비스 'K-판'(K-PAAN)을 오픈했다. 올해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새롭게 참여해 업무협약을 다시 체결한 것이다. 이번 협약을 계기로 'K-판'에서는 총 43만여 건의 자료 검색이 가능해졌다.
다섯 개 기관은 후대를 위해 장르별 '문화유산'을 수집‧정리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기관들이 디지털 공간에서 연대하고 있다는 사실은 실제로도 굉장한 일이다. 키워드 검색만으로 각 기관이 소장하고 있는 자료를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과가 이루어지기까지 오랜 기간 여러 기관들의 노력, 그리고 서로에 대한 연대의 믿음이 밑거름이 되었다. 문화예술 아카이브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숫자와 성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술자료를 기증하는 분들, 그리고 행정 현장에 있는 사람에게도 들려드리고 싶은 이야기다. '예술 박물관은 언제 지을 것이냐', '자료를 기증하면 단독 전시관을 만들어 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종종 받는다.
눈에 보이는 건물이나 숫자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대구 예술인들의 자료를 전국적인 'K-판' 자료 검색 키워드에 오를 수 있도록 디지털 자료화하는 것이다. 전국의 문화 자료들이 디지털 아카이브로 연결되는 큰 흐름에 대구 예술인들이 누락되어서는 안된다. 가까운 미래에 'K-판'에 대구 예술인 활동 자료들이 공유되도록 하겠다는 목표로 자료 정리와 목록화를 충실히 하고 있다.
지금 예술인들이나 유족들이 걱정해야 할 것은 눈에 보이는 '단독 전시관'보다는 어쩌면 앞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화가 이중섭이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그 기억이 전해지지 못했다면 지금 우리에게 회자될 수 있을까. 화가 박수근은 소설가 박경리에게 기억되고 기록되어 더욱 큰 감흥을 준다. 앞으로 우리에게 기억과 기록의 중요한 방법은 바로 디지털 작업이다. 후대에 끊임없이 해석될 수 있으려면 먼저 기억되어야 한다.
대구 예술인들의 발자취를 그 기억의 장으로 연결시키려는 것이 바로 우리가 하고 있는 작업 중 하나이다. 숫자로 그 성과를 섣불리 재단할 수 없는 까닭이다.
아카이브를 진행하고 있는 기관들은 자료를 '공유'함으로써 '연대'할 수 있고, 그 '연대'를 통해 나아갈 바를 찾고 있다. 그 연대의 손을 잡기 위해서는 대구도 충실히 자료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디지털 시대에 어쩌면 눈앞에 보이는 건물보다 중요한 것은 자료를 디지털화하여 체계적으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그 연대의 대열에 당당하게 설 수 있도록 많은 자료의 기증, 그리고 지원을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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