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문지기와 단물

정인열 논설위원
정인열 논설위원

"문지기가 되겠소." 문(門)지기. 문을 지키는 사람이란 뜻으로, 오늘날 흔히 수위라는 말로 통한다. 문을 지키는 일을 하는 만큼 번거로울 듯하지만 이를 바란 사람이 백범 김구이다. 김구는 '나라'의 울타리를 잃고 망국의 백성으로 일제에 고문과 설움만 실컷 당한 뒤라서 1919년 4월 중국 상해에서 '임시'지만 '대한민국 정부'가 생겼기에 그 문지기도 흔쾌히 바란 것이었다.

보호 울타리를 잃은 2천만 한국인은 약 35년간 '일제'의 가짜 나라에 의해 목숨과 삶의 보호는커녕 오히려 사형과 매질(태형), 고문, 옥살이에 시달렸으니 김구처럼 내 나라의 '임시정부'일망정 그 문지기라도 하고 싶었으리라. 물론 그는 문지기로 세월을 보낼 수 없었고 경찰 업무의 경무국 책임자가 됐다.

백성에게 나라 울타리가 절실하듯, 민주주의 정당정치에서 정당의 쓰임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정당의 이름으로 당원은 보호를 받거나 혜택을 누리는 대신, 잘못에 대해서는 걸맞은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정권을 잡겠다는 목표로 이해를 나누는 사람이 모인 정당의 존재 이유와 할 일은, 나라와 백성의 관계와 다를 바 없다. 당원을 보호하고 잘못한 당원은 벌함이 마땅하다.

그런데 요즘 제1야당인 국민의힘은 이런 원리가 작동되지 않는 이상한 무리 같다. 국민의힘은 내년 3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권 또는 정권 교체의 꿈을 이루겠노라는 인물이 불나방처럼 모이면서 문전성시이나 일부 인사의 행태는 당원의 자세가 영 아닌 모양새다. 지난 4일 이준석 당 대표가 마련한 서울 한 쪽방촌에서의 자원봉사 행사에 윤석열·최재형 등 일부 유력 대선주자만 쏙 빠진 일은 좋은 사례이다.

오죽 보기 민망했으면 같은 배를 탄 김태호 3선 국회의원은 자신은 대구 일정에도 양해를 구하고 자원봉사에 나섰다며 비판했겠는가. 그러나 이번 일로, 당 깃발 아래 모인 일부 유력 대선주자 경우 여론조사의 도토리 키재기에 빠져 당의 문지기라도 되는 헌신보다 들판에서 홀로 싸우기 힘들어 제1야당에 잠시 의탁했을 뿐임을 드러낸 것은 아닐까. 불면 날아갈 여론의 헛바람을 믿고 당의 단물만 빼먹겠다는 못된 속셈은 아닐까. 풍찬노숙에 온갖 욕을 먹으며 당을 지켰을 뭇 사람을 생각하니 여러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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