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막을 내린 '2020 도쿄 올림픽' 열기가 국내에서 어떻게 이어질지 주목받고 있다. 메달을 일군 효자 종목은 이번에도 반짝인기를 누릴 것이고, 프로 스포츠는 올림픽 성적에 따라 흥행에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올림픽 참가 선수들은 오는 10월에는 경상북도 구미에서 열리는 제102회 전국체육대회에서 다시 한번 기량을 과시할 것으로 기대된다.
도쿄 올림픽에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 희비가 엇갈린 종목이 여럿 있지만,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종목은 야구가 아닐까. 야구는 애초 목표한 우승은커녕 당연시했던 동메달조차 건지지 못하면서 팬 등 국민 비난을 자초했다.
야구 국가대표 선수들은 경기력을 떠나 정신력 등 경기에 임하는 태도에서 파이팅을 보이지 못했고, 코칭스태프도 국가대표 선발과 선수 관리에 실패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올림픽에 앞서 일부 구단 선수들이 숙소인 호텔에서 여성들과의 술자리로 코로나19에 감염되는 등 일탈 행위를 저질렀고 최근 음주운전과 대마초 반입, 도핑 사태가 잇따라 불거지면서 팬들은 더 분노하고 있다.
도쿄 올림픽 한국 야구 참패는 여지없이 국내 프로야구에도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프로야구가 지난 10일 도쿄 올림픽 개최로 연기한 페넌트레이스를 재개했으나 전체적인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경기장은 다시 텅 비게 되었고 TV나 인터넷 중계까지 외면받고 있다. 후반기 인터넷 포털의 프로야구 중계 실시간 접속자 수는 전반기보다 확 줄었다. 프로야구 관계자들이 우려하는 '그들만의 리그'가 현실화하는 느낌이다.
국내 프로야구는 어쩌면 올림픽 제도의 희생양일 수도 있다. 야구는 종주국인 미국 등 북미와 중미, 한국·일본·대만 등 동아시아에서 큰 인기를 끄는 프로 스포츠로 전 세계에 널리 보급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올림픽 종목으로는 거리가 있었다.
1896년 시작된 올림픽 역사에서 야구의 존재감은 축구 등 다른 구기 종목에 비해 미미하다. 야구는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 때 정식종목이 돼 1996년 애틀랜타, 2000년 시드니, 2004년 아테네, 2008년 베이징 대회까지 5차례 열렸지만 2012년 런던,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대회에서는 퇴출당했다. 이번에 부활했지만, 야구는 2024년 파리 대회에서 다시 퇴출당한 상태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지난해 12월 8일 집행위원회를 열어 '2024 파리 올림픽 조직위원회'가 제출한 종목 구성 안을 승인했는데, 2020 도쿄 올림픽 종목 중 야구·소프트볼·가라테 등이 퇴출당했다. 반면 이번 도쿄 대회에서 처음으로 정식종목이 된 스케이트보드, 스포츠클라이밍, 서핑은 2024년 대회에도 살아남았으며 브레이크댄스가 처음으로 정식종목에 선정됐다.
야구·소프트볼·가라테는 모두 일본에서 인기를 끄는 종목이다. 이 가운데 야구는 패자부활전이란 이상한 경기 방식을 도입해 퇴출 명분만 확인시켰다는 평가를 들었다. 스포츠 전문가들도 야구 경기 방식을 이해하려면 한참 시간이 걸릴 정도였다.
올림픽 야구에서 한 번도 우승하지 못한 일본은 개최국 입김으로 3번까지 져도 결승에 진출, 금메달을 노릴 수 있는 보험에 드는 식의 경기 방식을 도입했다. 일본이 이 방식을 채택한 건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한국의 선전을 우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 등에 한두 차례 지더라도 더 도전하는 여지를 남긴 것이다. 결과론적으로 일본은 예선전부터 결승전까지 5전 전승을 거둬 싱거운 우승을 차지했다.
야구는 이런 경기 방식에다 6개국만이 참가해 메달 가치를 떨어뜨렸다. 절반의 승리, 50%의 확률로 메달을 딸 수 있었기에 야구 금메달은 축구 동메달보다 못하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올림픽 개막 전인 지난달 16일 진행된 리얼미터의 '축구 동메달 대 야구 금메달' 난이도 조사에서 축구를 택한 응답자는 42.2%였지만, 야구를 택한 응답자는 25.2%에 머물렀다. 축구와 야구에 대한 높은 관심에도 두 종목 모두 메달권에 진입하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이런 여파로 대회 기간 야구가 동메달을 따도 군 면제 혜택을 주지 말라는 국민청원까지 나왔다. 대표팀이 4강 토너먼트에서 일본과 미국에 연달아 패해 결승 진출이 좌절된 지난 6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야구에서 동메달을 취득하더라도 군 면제 혜택 취소해 주세요' 등 병역 특례법 개정을 희망하는 게시물들이 올라왔다. 만약 야구 대표팀이 3, 4위 결정전에서 도미니카공화국을 꺾고 동메달을 획득했다면 대표선수들은 더 난감한 상황에 빠졌을 수도 있다. 진 게 오히려 다행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야구는 2028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개최국 미국의 선택으로 다시 정식종목이 될 수도 있겠지만, 현 실정으로는 퇴출을 반복할 처지에 놓여 있다. 도쿄 올림픽을 보면 야구 퇴출은 당연해 보인다.
올림픽에서 가장 역사가 긴 종목은 축구다. 축구는 1900년 올림픽 때 정식종목이 됐으며 이후 한 차례(1932년)를 제외하고 모든 대회에서 열렸다. '김연경 신드롬'을 일으킨 여자배구는 1964년 도쿄 대회에서 정식종목이 됐다. 당시 일본 여자배구는 홈그라운드에서 우승하며 '동양의 마녀'로 불리었으나 이번에 한국에 덜미를 잡히며 8강에도 오르지 못하는 수모를 당했다.
올림픽에서 한 차례도 빠짐없이 열린 종목은 사이클과 수영, 육상, 체조, 펜싱 등 5개다. 레슬링은 1900년, 수구와 조정은 1896년 대회 한 차례씩을 제외하고 모든 대회에서 개최됐다. 우리나라 국기 태권도는 1988년과 1992년 대회에서 시범경기로 열렸으며 1996년 대회를 건너뛴 후 2000년 대회부터 정식종목으로 꾸준히 열리고 있다.
올림픽 종목은 시대상을 반영하며 진입과 퇴출을 거듭하고 있다. 올림픽에서 살아남기 위한 경쟁도 치열하다. 우리나라 야구는 팀 수 등 저변이 넓지 않음에도 그동안 올림픽 등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서 최고 인기 프로 스포츠로 발전을 거듭해왔다. 국내 프로야구가 그동안 위기 없이 발전만 한 것은 아니지만 코로나19와 겹친 이번 올림픽 참패와 각종 도덕성 훼손 사태는 극복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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