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언론은 본질적으로 편해선 안 되는 사이다. 언론의 존재 이유가 권력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본분을 망각하고 권력에 기생하면 홍보 기관일 수는 있어도 살아 있는 언론은 아니다. 죽은 언론이 판치는 세상에서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권력과 언론이 한통속인 북한 같은 독재국가에서 국민은 절대 권력에 짓눌린다.
국회 절대 의석을 차지한 집권 세력이 징벌적 손해배상제 등을 골자로 하는 언론중재법을 밀어붙이려 한다. 언론 단체와 학계, 법조계, 야당 등이 일제히 우려의 목소리를 내지만 아랑곳 않는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입법을 서두르는 모양새가 주장대로 언론중재에 목적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송상현 전 국제형사재판소장 등 법조계 원로들이 "헌법에 보장된 언론·출판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할 수 있다"는 성명서를 냈다. 관훈클럽도 우려와 비판을 담은 성명을 냈다. 관훈클럽이 입장을 낸 것은 64년 역사상 처음이다. 한국기자협회 등 5개 언론 단체 역시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반헌법적 언론중재법 개정 즉각 중단하라"는 공동 성명을 채택했다.
실제로 언론중재법엔 독소조항이 널려 있다. 대표적인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허위·조작 보도 시 손해액의 5배를 언론사가 징벌적으로 배상하라는 것이다. '피해자가 손해를 입은 만큼 배상한다'는 민법의 원칙은 무시됐다. 나아가 피해를 주장할 경우 고의·중과실이 없었다는 입증 책임을 궁극적으로 언론사에 돌렸다. 이 역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사람이 입증 책임을 지는 법 상식에 어긋난다. 허위 보도와 조작 보도, 악의적 보도 등 경계가 불명확하거나 추상적 용어가 넘쳐 나지만 판단 기준은 모호하다. 권력 입맛에 맞춰 허위 보도와 조작 보도, 악의적 보도가 재단될 여지가 크다. 악의적 정치인들이 전략적 소송 공세를 펼치면 언론은 위축되고, 국민 알 권리는 침해된다.
이는 선진 자유국가에서 입법 사례를 찾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만든 미국조차 언론에는 적용하지 않고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도 "해외 주요국에서 언론 보도 피해에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별도로 규정한 사례를 찾지 못했다"고 확인했다.
부패 혐의를 받거나, 언론인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이들이 앞장서고 있는 것은 시사하는 게 많다. 이상직 의원은 지난 2월 국회 문체위 소위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 입법을 촉구해 꺼져 가던 불씨를 살렸다. 그를 둘러싼 각종 의혹 보도가 잇따르던 때였다. 그는 500억 원대 횡령·배임 혐의로 구속됐다. 일찌감치 법 개정이 이뤄졌더라면 과연 의혹 보도가 잇따를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한겨레신문 기자 출신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이 구설에 오른 것도 마찬가지다. 그는 2018년 재개발이 예정된 서울 흑석동 상가를 16억 원 대출을 끌어들여 구입했다가 '부동산투기'라는 언론의 집중포화를 받고 물러났다. 올해 열린민주당 비례대표 의원으로 권력층에 복귀한 그는 법안 소위 강행 처리에 앞장섰다. '여배우 스캔들' '형수에 대한 욕설'로 구설에 오르내리는 이재명 경기지사는 '5배도 약하다' '망하게 해야 한다'며 적대적 언론관을 드러낸다. 정도를 걸어온 언론인 단체는 반대하고, 정치인으로 변신한 기자 출신이 찬성하는 상황이다.
이런 때 트루먼 미국 대통령이 남긴 말은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정치인들이 새겨들을 만하다.
"언론이 나에 대한 비판을 멈출 때는 내가 잘못 가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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