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19로 인해 사상 초유의 무관중 경기로 진행되었던 도쿄 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폭염과 코로나로 인해 힘든 경기를 벌였던 선수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올림픽은 단순히 최고의 선수들이 모이는 운동 시합이 아니라 스포츠를 통해 국제 연대 및 평화 증진에도 기여하는 전 세계적 축전이다. 올림픽 헌장은 올림픽 정신으로 노력의 기쁨, 모범적 행동, 사회적 책임, 보편적 기본 윤리에 대한 존중, 인간의 존엄성, 평화로운 사회 건설, 스포츠 활동의 기본권적 성격, 스포츠의 정치적 중립성 등등을 규정하고 있다.
정치적 중립과 관련하여 올림픽 헌장 제50조 2항은 '어떤 종류의 시위나 정치, 종교, 인종차별적 선전도 금지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올림픽의 역사는 정치적 저항 행위의 역사라고 할 정도로 선수들의 정치적 의사 표현은 계속되었다. 그 시초로 꼽을 만한 것이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의 손기정 선수이다. 나치의 인종주의적 정책에 놀란 일부 국가들의 보이콧에 직면하자 독일은 올림픽을 표면적으로는 독일의 근대성과 개방성을 부각하면서 속으로는 아리안족의 우수성을 과시하는 선전장으로 활용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히틀러의 의도는 보기 좋게 꺾였다. 육상 단거리에서 흑인인 미국의 제시 오언스가 100m 달리기 등 네 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였고, 마라톤에서는 손기정 선수가 우승을 차지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남부의 백인 표를 의식해 미국 역사상 최초의 올림픽 4관왕인 오언스를 백악관에 초대도 하지 않았다. 오언스는 "히틀러는 나를 모욕한 적이 없다. 나를 모욕한 건 미국의 루스벨트였다"라고 일갈했다. 한편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 선수와 3위로 입상한 남승룡 선수는 시상식에서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고, 손기정 선수는 화분으로 가슴의 일장기를 가렸다. 일장기 말소 사건과 겹치면서 두 선수는 환영은커녕 귀국 후 체포되어 '다시는 육상을 하지 않는다. 조선 학생들과 집단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각서를 써야 했다. 그러나 두 선수의 행동은 멕시코시티 올림픽의 유명한 '블랙파워 설루트'의 모티브가 되었다.
1968년 멕시코시티에서 개최된 올림픽에서 미국 흑인 선수 토미 스미스와 존 카를로스가 육상 200m에서 금메달과 동메달을 수상하였다. 당시 미국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암살당한 후 전역에서 흑인들의 폭력시위가 격화되던 상황이었다. 시상대에서 스미스와 카를로스는 미국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검은 장갑을 낀 손을 치켜들고 고개를 숙인 채 저항적인 흑인민권운동의 상징인 이른바 '블랙파워 설루트'(black power salute)를 하였다. IOC는 이들이 올림픽에서 금지되는 정치적 행위를 했다고 간주하였고, 두 선수는 선수촌에서 즉시 쫓겨났다. 그 후 두 사람은 오랜 기간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이번 도쿄 올림픽에도 여러 가지 형태의 정치적 의사 표현이 문제가 되었다. 8월 1일 포환던지기 시상대에서 양팔로 'X' 자를 그린 미국의 은메달 수상자 레이븐 손더스에 대해 IOC가 시상식에서 정치적 메시지를 표출했다는 이유로 조사하였다. 손더스는 'X' 자는 "억압받은 사람들이 만나는 교차로"라고 말했다. 다른 선수들이 손더스와 비슷한 제스처를 취하는 가운데, 미국올림픽위원회는 손더스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징계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한편 2일 중국의 사이클 금메달리스트 두 명이 마오쩌둥 배지를 달고 시상식에 나왔다. 마오쩌둥 배지는 문화대혁명 때 홍위병들이 자랑스럽게 달고 다닌 배지이고, 마오이즘이 중국의 지도 이념이라는 점에서 흑인 등 소수 계층의 저항적 표현과는 다소 결이 다르다. IOC는 중국올림픽위원회가 선수들에게 경고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며 조사를 끝냈다.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올림픽 무대에서 정치적으로 억압받은 선수들의 정치적 의사 표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올림픽 정신에 크게 위배되지 않고 다른 선수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정치적 표현 행위를 심하게 제한하지 않는 방향으로 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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