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모가디슈’, 코로나 상황에도 좋은 영화는 본다

‘모가디슈’, 남북 공조 소말리아 탈출기에 관객이 몰린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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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모가디슈'의 한 장면

코로나19의 유행이 벌써 1년 반이 되어가는 현재, 모든 분야가 그 영향을 받았지만 특히 극장의 충격은 컸다. 지난해 극장 관객 수는 전년 대비 무려 85%가 줄었다. 그래서일까. 영화 '모가디슈'가 관객 몰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현 영화계에 작은 희망처럼 보인다.

◆'모가디슈'는 손익분기점을 넘을까

류승완 감독의 영화 '모가디슈'가 170만 관객을 넘겼다(8월 8일 기준). 만일 평상시라면 이런 기록은 '흥행실패'로 평가될 수 있을 게다. 여름 블록버스터 시즌에 들어온 영화가 아닌가. 1천만 관객은 아니라도 그에 상응하는 관객 수가 되어야 성공으로 얘기됐었고, 그래서 그만한 제작비가 투여되는 영화들이 이 시즌에 포진됐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이제 옛 이야기가 됐다.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인해 텅텅 비어버린 극장은 블록버스터 시즌이라고 해도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모가디슈'가 거둔 이 성적은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곧 200만 관객도 넘길 것이고 어쩌면 '손익분기점'을 넘길 수도 있다는 희망적인 예상들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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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모가디슈'의 한 장면

총 제작비 255억원이 들어간 '모가디슈'의 손익분기점은 600만 관객이 돼야 넘길 수 있다. 하지만 잇따른 개봉 연기 등으로 침체를 겪는 극장들을 위해 상영관협회가 총 제작비의 50%가 회수될 때까지 매출 전액을 지원하겠다는 지원책을 내놓으면서 손익분기점은 그 절반인 300만 관객으로 낮아졌다. '모가디슈'가 손익분기점을 넘길 가능성이 높아진 이유다.

코로나 상황에서 관계자들은 300만 관객이 과거 1천만 관객에 상응하는 흥행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모가디슈'가 만일 손익분기점을 넘는다면 코로나 상황에도 '될 영화는 된다'는 새로운 희망이 생길 수 있다.

실제로 여름 블록버스터 시장에 들어온 외화들도 성적이 나쁘지 않다. '보스베이비2'가 83만 관객을 기록했고, '블랙위도우'는 290만 관객을 동원하며 300만 돌파를 앞두고 있다. 지난 4일 개봉한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28만 관객을 동원했지만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받고 있다. 이제 이번 주에 '씽크홀'과 '프리 가이' 개봉에도 희망 섞인 전망들이 나오고 있다. '모가디슈'가 어떤 가능성을 열면서 오랜만에 생겨난 극장가의 활력이다.

아쉬운 건 진정세로 돌아서는 줄 알았던 코로나19가 최근 갑자기 급속도로 확산되기 시작하면서 4단계 거리두기가 앞으로도 몇 주 지속되는 상황이다. 만일 4단계 거리두기 상황이 아니었다면 코로나 시국에도 극장가를 찾는 관객들의 발길은 훨씬 가볍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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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모가디슈'의 한 장면

◆'모가디슈'의 무엇이 관객들을 열광케 했을까

먼저 제목이 특이하다. 사실 아프리카 소말리아의 수도가 모가디슈라는 걸 아는 이들이 별로 없어서다. 게다가 이 영화는 이곳에서 1991년에 실제로 벌어진 내전을 소재로 했다. 우리에게 이 시대적 배경은 1987년 6.10 민주화 항쟁이 6.29 선언으로 이어진 후, 88올림픽이 치러지면서 '한국의 세계화'가 막 화두로 떠오르던 시기로 기억된다.

영화도 이 시기의 공기를 가져온다. 88올림픽으로 국제사회에 얼굴을 내민 한국이 UN 회원국으로 가입하기 위해 지지의 한 표를 얻기 위한 외교전이 벌어지던 시기다. 아프리카 소말리아가 갑자기 한국영화의 배경이 된 건, 그곳이 북한대사관과 치열한 외교전을 벌이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금세 내전의 피로 얼룩져버리는 모가디슈지만, 영화는 그 이국적인 풍광으로 코로나 시국에 떠날 수 없는 관객들의 마음을 잡아 끈다. 푹푹 찌는 더위가 느껴지는 그곳이지만, 부감(俯瞰)으로 내려다본 집들과 바다를 배경으로 하는 풍광은(물론 이 광경은 모로코에서 촬영됐다. 소말리아는 여행 금지국이다.) 우리네 관객들의 시선을 빼앗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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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모가디슈'의 한 장면

게다가 1990년대라는 '복고적 시점'은 현재의 어려운 시국을 맞아 과거로 '돌아가고픈' 향수와 추억마저 불러일으킨다. 복고풍 의상들과 헤어스타일만이 아니다. 지금은 발견하기가 힘든 어떤 성장과 성취에 대한 기대감이 존재하던 그 시기에 대한 향수는, 그것만으로도 관객들에게 정서적인 포만감을 준다.

남북한이 모가디슈라는 타국에서 벌어진 내전 속에서 만났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공동경비구역 JSA' 같은 화해의 드라마를 기대하게 한다. 그리고 이건 실제로 이 영화가 그리고 있는 중요한 스토리다. 한국 대사관 한신성 대사(김윤석)와 북한의 림용수 대사(허준호)는 외교전을 벌이며 대결하지만, 갑작스레 터진 내전 상황 속에서 생존 자체에 위협을 받게 되자 '함께 살아남는 길'을 선택하게 된다. 이 휴머니즘은 관객들이 영화에 빠져드는 가장 강력한 유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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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모가디슈'의 한 장면

◆쿨해진 류승완 감독의 신파 없는 드라마와 액션

하지만 남북 간의 우정이 브로맨스로서 강조되는 스토리는 자칫 신파로 빠져들 우려도 적지 않았다. 우리네 블록버스터 영화가 볼거리의 블록버스터(액션)만큼 많이 활용했던 것이 감정의 블록버스터(신파)였던 건 사실이다.

예를 들어 윤제균 감독의 1천만 영화 '해운대' 같은 재난영화에서도 쓰나미보다 더 관객들을 흔들어 놓은 건 다소 신파적인 감정의 롤러코스터였다. 하지만 이런 신파 코드가 더 이상 지금의 쿨해진 관객들에게 먹히지 않는다는 걸 류승완 감독은 경험적으로 알게 된 게 아닐까. 전작이었던 '군함도'의 실패가 바로 신파로 흐르면서 쏟아졌던 비판 탓이다. 황정민, 소지섭, 송중기, 이정현 같은 초호화 캐스팅을 하고도 여름 블록버스터 시장에 나온 '군함도'는 650만 관객에 머무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은 바 있다.

그래서였을까. '모가디슈'는 신파에서 벗어나려 애쓴 티가 역력하다. 한신성 대사와 림용수 대사의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하는 훈훈해지는 관계를 그리면서, 동시에 한국 대사관 측의 안기부 출신 정보요원 강대진 참사관(조인성)과 북한 대사관 측의 태준기 참사관(구교환)이 팽팽하게 대결하는 모습을 채워 넣었다.

즉 내전 상황으로 인해 약탈을 당한 북한 대사관 사람들이 한국 대사관에 의탁하게 되고 함께 모가디슈를 탈출하는 그 과정은 휴먼드라마로 그리지만, 그 안에서도 북측 인사들을 '망명자'로 만들려는 강대진과 아예 한국 대사관을 무력으로 장악하려는 태준기의 대결이 이어지는 것. 이 균형감각은 이 영화가 신파로 흐르지 않으면서 적당한 거리감을 둔 채 훈훈한 화해의 광경을 보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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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모가디슈'의 한 장면

또한 류승완 감독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는 '액션 연출'에 있어서도 '절제미'가 엿보인다. 실제 내전의 한 가운데 있는 것 같은 실감나는 내전의 풍경 속에서, '모가디슈'의 액션은 온전히 '탈출기'에 집중된다. 액션이라고 하면 공격과 방어를 모두 떠올리지만, '모가디슈'에는 공격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대신 시시각각 다가오는 위험으로부터 방어하고 도망치는 과정들이 긴박감 있는 액션 연출로 그려진다. '멋진 액션' 장면을 담으려는 것에서 탈피해 실제 같은 액션을 추구한 것. 그 결과 관객들은 2시간 동안 모가디슈라는 공간 속에 저들과 함께 갇혀 있는 듯한 움직임을 실감한다.

사실 여름 블록버스터 시즌에 300만 관객 동원 목표를 말하게 된 상황은 짠하다. 그만큼 현재 코로나 시국에 영화관들이 처한 위기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대목이다. 게다가 OTT 같은 디지털 플랫폼으로 영화들이 옮겨가고 있는 상황은 더더욱 극장의 미래에 암운을 드리운다.

그래서 '모가디슈'의 이 작지만 결코 작다 말할 수 없는 성취는 더더욱 큰 가치로 다가온다. 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영화관이 설 자리가 분명하고, 또 거기에 어울리는 영화들이 존재한다는 믿음을 주기 때문이다. 짠한 면은 있지만 그것만으로도 '모가디슈'의 성취는 충분하다 말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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