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기의 필름통] 영화 '암살자들'

영화 '암살자들'의 포스터
영화 '암살자들'의 포스터

2017년 2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한 남자가 봉변을 당한다.

두 여자가 남자의 얼굴에 뭔가를 바르고 도망친 것이다. 그는 공항 요원에게 달려가 도움을 요청한다. 의료실로 안내돼 진료까지 받는다. 그러나 불과 1시간도 안 돼 그는 싸늘한 시체가 되고 만다.

곧 그의 신분이 드러난다. 북한 김정일의 장남이자, 김정은의 이복형인 김정남이었다. 백주에 공공장소에서 암살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이 사건은 전 세계로 알려지면서 충격을 주었다.

'암살자들'(감독 라이언 화이트)은 김정남 암살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범행 현장, 암살의 배후, 범인으로 지목된 두 여성의 재판과정과 결과 등을 CCTV 영상과 사건을 취재한 언론인들의 증언을 통해 소상하게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다.

영화 '암살자들'의 한 장면. 범인으로 지목된 두 여성.
영화 '암살자들'의 한 장면. 범인으로 지목된 두 여성.

김정남의 죽음은 암살로는 너무나 대담하고, 그 범인들은 너무나 어처구니없고, 결말은 너무나 의혹투성이인 사건이었다. 두 여인은 왜 김정남을 죽이게 된 것일까. 그들은 북한에 고용된 살인청부업자인가. 그리고 CCTV와 사람들이 많은 공공장소를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두 여성은 인도네시아의 시티 아이샤와 베트남의 도안 티 흐엉이다. 유명인사가 돼 돈을 많이 벌고 싶어 하는 전형적인 20대 동남아 여성이다. 그러나 단 돈 100달러도 벌기 어려운 것이 이들의 현실이다.

그런 그들에게 한 남자가 접근한다. 당시 동남아에서 유행하던 몰래카메라 영상 제작업자였다. 손에 로션을 묻혀 모르는 남성의 얼굴에 바르면 그들이 당황해하는 영상 같은 것을 찍어 유튜브에 올리는 이들이다. 둘은 몇 번에 걸친 작업으로 손 쉽게 돈을 벌었다.

그리고 사건 당일. 두 여성에게 하나의 타깃이 지정된다. 배가 나온 대머리 아저씨였다. 그가 무인발권기 앞에 설 때 뒤에서 덮치라는 것이다. 손에는 알 수 없는 끈적이는 액체를 뿌려주었다. 그리고 둘은 보통 때처럼 그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다.

두 여성은 그가 김정남인 것도 몰랐고, 그들의 손에 묻은 액체가 화장품이 아닌 암살용 독극물인 것도 몰랐다. 둘은 어느 순간 세계를 놀라게 한 사건의 주범이자, 암살자로 떠올랐다.

영화 '암살자들'의 한 장면
영화 '암살자들'의 한 장면

'암살자들'은 누구나 탐낼 만 한 흥미로운 소재의 다큐멘터리다. '형제의 난'은 카인과 아벨 이후 무수히 역사 속에 등장하는 혈육의 권력 전쟁이다. 한때 북한의 차기 지도자로 육성된 백두 혈통의 장자. 그러나 어느 순간 고향을 등지고 세계를 돌아다니는 야인이 된다.

이제 정권은 배다른 동생에게 넘어갔다. 형은 그런 북한의 세습 정치를 비난하면서 권력의 중심이 된 동생의 눈 밖에 난다. 거기다 형이 미국 CIA에 고용됐다는 소문까지 나돈다. 그리고 전대미문의 공항 암살사건이 터진다. 개연성은 너무나 명백하다. 김정남의 죽음이 절실(?)했던 세력은 누구였을까.

참으로 영화 같은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누구나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들게 된다. 라이언 화이트는 선댄스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이 작품은 그의 네 번째 다큐멘터리 영화다. 그가 놓칠 수 없는 소재다.

'암살자들'은 두 동남아 여성이 사건에 휘말려들게 된 원인과 이후 재판 과정 등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이를 통해 그들을 고용한 북한 공작원들의 정체와 죄 없는 여성들을 이용한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반인륜적인 범죄에 대한 비난을 담고 있다. 당시 영상들과 증언을 활용해서 사건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보여준 것이나 북한과 인도네시아, 베트남, 말레이시아의 역학 관계들을 이해하게 된 장점도 있다.

영화 '암살자들'의 한 장면
영화 '암살자들'의 한 장면

그러나 치열한 다큐멘터리가 지향하기에는 안일한 점도 있다. 두 여성은 체스판으로 따지면 말에 불과한 존재들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체스를 두는 이다. 그렇다면 좀 더 큰 범위의 접근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이용당한 동남아 여성 둘에게 포커스를 맞추기보다, 김정남과 김정은 형제의 비극적인 운명이나, 아니면 김정남의 추락과 비운, 미국 CIA 역할 등에 초점을 맞추고 좀 더 많은 시간, 공을 들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드러난 자료와 드러날 자료에 대한 불확실성을 감안하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사건이 일어난 지 4년, 두 여성이 무혐의로 석방된 지 2년 만에 다큐멘터리를 완성한다는 것은 이 방법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 북한이란 존재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한계도 있다. 미국에서도 상영에 어려움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감독 또한 "할리우드가 북한 정권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에 영화 개봉에 불리한 상황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12일 개봉. 104분. 15세 이상 관람가.

김중기 문화공간 필름통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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